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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의 서사연구실 게시판입니다.

  서사물의 공간분석의 이해
  이영식 [ E-mail ]
  


I. 들어가는 말

    공간구조대한 이해는 문학작품을 깊이있게 분석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맨 처음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1:1)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공간적 실체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버트하임(2002/1999)이 지적한대로 시대마다 공간에 대한 패러다임이 있었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변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시대의 문화적 아들 딸로서 이러한 시대적 공간 패러다임에 영향을 받으며 또 작가 스스로의 주관적 경험에 의하여 작품 속의 인물들이 활동 할 수 있는 의미 공간을 창조한다. 먼저는 공간 구조를 창조하고 그 창조된 공간 구조 속에서 등장 인물들의 움직임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러한 창조활동은 주제를 표출하기 위하여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지만 또한 무의식적인 반영일 수 있다. 이상우(1999)에 따르면 현대 소설은 과거보다 공간 창조에 훨씬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공간을 비롯하여 시간과 역사/문화적 요소들, 즉 소설의 삼대 배경요소들은 현대 소설에 있어서 "이미지로 엮어진 의미의 총화"(p.201)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현대소설의 배경은 단순한 시간과 장소로서가 아니라 인물의 성격과 행동을 결정하는 어마어마한 존재가 되거나 공간적 미학의 구조를 통해 관념, 의식, 심리를 암시하고 반영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p.201)라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분석하는데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간에 대한 분석적 개념들을 살펴보기 전에 버트하임(2002/1999)이 말하는 서구인의 공간개념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므로써 우리들의 공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자.

II. 서구인들의 공간의식: 단테신곡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

    버트하임의 [공간의 역사:The Pearly Gate of Cyberspace]라는 책의 목차를 따라가면서 서구인들의 공간관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1장 / 영혼 공간(soul-space): 분투하는 영혼과 천국의 이미지(그림은 단테의 초상화)

    중세 서구인들의 공간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분투하는 영혼과 천국의 이미지"이다. 이들의 공간관을 가장 잘 드러내는 책이 단테의 신곡이다. [신곡]의 형 식은 전체적으로 3부로 구성됐 고, 각부는 33장으로 나뉘어 모두 99장으로 이뤄졌다. 여기에 '지옥 계'의 서장을 더하면 딱 100장이 된다. 3이란 숫자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신앙에서 나왔고, 100은 10의 제곱이며, 10은 3의 제곱에 일을 합해서 이뤄진 완전수로 단테는 생각했다. 음률도 3행으로 구성 돼 총 수가 1,423행이다.

    신곡에는 지구를 중심으로 행성까지 천국과 지옥, 그리고 연옥이 매우 실감나도록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지구나 행성 자체는 실체가 아니라 단지 천국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생로병사가 없고 완전한 행복을 보장해 주는 천국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버트하임은 중세의 공간관이 현대의 사이버 스페이스와 매우 닮은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 날 인류가 경험하는 사이버 스페이스는 분명 전화선과 컴퓨터라는 물리적 실체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사실 인터넷으로 연결된 거대한 사이버 스페이스는 영과 일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2진법 디지탈 신호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현실만큼이나 현실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이점에 관해서는 뒤에 사이버 스페이스를 논하면서 세장에 걸쳐서 상술하고 있다.

    단테의 신곡에 나타난 공간 구조는 우리의 논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사례이므로 좀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단테가 창조한 공간구조는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이라는 3층으로 되어있다.

    신곡은 지옥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지옥의 모습은 삼각형을 거꾸로 놓은 형태다. 정상은 지표에서 시작하여 맨 밑은 지구 중심이다. 지옥의 반대편으로 나오면 연옥으로 이어진다. 지옥은 9층으로 나뉘어졌있고 각 층은 죄질에 따라 다양한 강도의 형벌을 받는다. 지옥에 대한 그의 묘사는 오감을 자극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타임머신을 타고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할 정도이다. 맨 아래층엔 천국에서 추방당한 악마 루시퍼가 자리잡고 있다. 단테가 그리는 지옥은 인상은 스스로의 악에 의해서 자초된 세계이며 악이 인간을 얼마나 심각하게 질식시킬 수 있는 지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을 덕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베어있다. 단테는 자신에게 가장 많이 영향을 끼친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으며 24시간 동안 지옥에 머문 뒤 21시간에 걸쳐 남반구의 지상으로 올라온다.

    연옥은 바다 한가운데 돌출한 분화산처럼 생겼고(종을 엎어놓은 모양) 역시 많은 작은 층계들이 있다. 절망과 고통 뿐인 지옥과 달리 연옥은 밤낮이 존재한다. 지옥과 연옥이 또 다른 점은 등장인물들의 동선(動線)이 지옥은 지구 중심부를 향해서 내려가는 방향이지만 연옥부터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연옥에서는 벌을 받 는 인간들은 경범죄를 저질렀을 뿐 교회에서 규정한 구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자는 아니고 나름대로 선하게 살던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다만 이곳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막연히 기다리는 정거장쯤으로 묘사되되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처량하다. 대신 희망이 있어서 그런지 지구보다 더 활기가 넘친다. 연옥에서 만 3일을 지낸 단테는 인간의 승리를 상징하는 천국으로 향한다. 지옥에서 연옥을 거쳐 천국 입구까지 동행한 베르길리우스는 그리스도교 교리에 따라 세례를 받지 않아 천당에 들어갈 수 없어 단테와 헤어진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3일 동안 천국을 돌아 다닌다. 천국은 춤과 노래의 나라다. 광명만 존재해 어둠과 밤이 없 다. 천국의 모든 성인은 회전하는 9개 층에 각각 자리잡고 있으며, 끊임 없이 이어지는 음악과 관현악의 조화는 신의 정의란 질서를 가 르쳐준다. 버트하임이 지적하듯이 천국의 모습은 다른 곳에 비하여 애매한 인상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그곳이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 그 어떤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옥의 밑바닥을 통과하여 연옥의 정화 과정을 거쳐 천국으로 올라가는 여행(주인공의 動線에 주의)은 일종의 중세적인 심리요법으로 프로이드식으로 말하자면 내리누르는 자아의 무것은 짐을 벗어 버리고 존재의 완전한 가벼움을 향한 추구이다.
===>그림 보기[지옥공간] [연옥공간] [천국공간]
2장 / 물질 공간(physical space): 육체에 대한 지나친 관심

    원근 화법에 의해 설정된 구체적인 시점은 화가와 관찰자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물질 공간 내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버트하임은 조토의 그림에서 공간에 패러다임의 전환을 본다. 단테의 관심사였던 영적 상상력을 물적 상상력이 대신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육체의 눈은, 가장 근원적인 예술적 시각기관으로 인식되어 왔던 기독교 영혼의 내적인 눈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각기술상의 발전과 더불어 고딕 시기의 영적 신비주의는 완전히 소멸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향후 500년 동안 서구 예술의 기본적인 뼈대는 단연코 육체의 공간이 차지했다.

    현대인들은 공간을 모든 것을 에워싸는 연속적인 3차원의 텅 빈 공간으로 생각하는데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그 외의 다른 견해를 생각하기조차 힘들지만 사실 그런 3차원적 공간 개념은 300여 년의 발전 과정을 거쳐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 공간은 부피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사물의 표면이었다. 구체적인 사물만이 깊이를 갖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공간은 부피가 전혀 없다. 그는 텅빈공간을 두려워 한 것 같다.

    과학 분야에서 공간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명료하게 제시한 사람이 갈릴레오 갈릴레이(1565-1642)였다. 현대 물리학의 토대가 된 갈릴레오의 공간 개념은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림으로 표현한 것과 똑 같은 연속적이며 균등한 3차원 공간이었다. 그것은 실재 자체의 존재론적 기반이자 모든 사물이 존재하고 움직이는 중립적인 활동 영역으로 인식된 것이다. 즉 갈릴레오가 파악한 우주는 오직 물질과 공간만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르네상스 화가들이 가르쳐 준대로 과학자의 눈을 육체로부터 분리한 다음에 그 가상의 눈이 주위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도록 했다. 이와 같이 육체로부터 분리된 눈/정신은 18세기 내내 실재를 판별하고 규정하는 역할을 했다.

3장 / 천체 공간(celestial space): 영혼 세계의 삭제

     중세의 공간적 은유는 지구의 공간과 천체의 공간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인식에 기초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변화를 가져오는데 코페르니쿠스는 지구 중심의 공간 인식에서 태양중심의 우주를 생각해 내었다(지동설 주장). 지동설에 따른 공간체계의 잠재력을 진정으로 깨달았으며, 또 한 지구 공간과 천체 공간의 중세적 구분을 진정으로 무너뜨린 인물은 독일의 수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였다. 그는 천체를 구체적인 물리적 행동의 공간으로 파악한 최초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천체의 세계를(지구와 같은)구체적인 물질세계로 간주하고서 천체를 자연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구체적인 물체로서 취급함으로써 공간 개념의 일대 변혁을 가져온 것이다. 그에 따르면 행성을 궤도 주위로 돌게 하는 것은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우주에 내재해 있는 물리적 힘이었다. 이렇게 하여 중세의 신학적, 은유적 공간관을 구체적 물질적 공간관으로 대체한 인물이 된 것이다. 이어서 뉴턴은 케플러로부터 시작된 지구 공간과 천체 공간의 통합을 만유인력이라는 간단한 수학의 법칙으로 완성하였다. 그 결과 천체 공간과 지구 공간은 하나의 연속 선상에 놓이게 되고 단일한 연속적인 물질세계로 인식되었다.

"이윽고 18세기 중엽에 새로운 우주론은 거의 완전하게 세속화되었고, 본질적으로 무신론적인 뉴턴주의는 근대 서구를 마침내 지배하게 된다. 반 데카르트론자들의 주장대로, 기계론은 결국 무신론적인 세계관을 낳았다. 모어와 뉴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간은 우주체계 내에서 신성을 영속시키는 매체로서 더 이상 인정되지 않았다. 결국 승리는 유물론자들의 것이었다. 이성의 시대에 인간이 서 있는 곳은 모든 것이 신과 연결되어 있고 천사들로 가득 찬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무한한 유클리드 공간에서 목적 없이 운행하는 커다란 바위 덩어리 위였다. 이렇게 중세는 진정으로 끝이 났다"

4장 / 상대론적 공간(relativistic space): 차가운 우주에서 길을 잃다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세계상은 공간을‘우주의 적극적인 참여자’라고 명명한다. 상대성 이론을 필두로 한 20세기의 공간 이론은 공식을 사용해 장소를 단순화 한다. '공간의 무정부상태'인 셈이다. 그래도 기계론적 우주론에서는 매우 수동적이기는 하지만 우주 가운데 신이 존재할 여백이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무한히 확장된 상대론적 우주 공간 안에서는 신이 더이상 있을 자리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서구의 공간관은 우주 공간에서 신의 자리와 역할을 완전히 삭제하는 쪽으로 발전되었던 것이다. 상대론적 공간 안에서 절대는 인정되지 않는다. 다른 어떤 장소보다 더 특별한 공간이 없다면, 목표로 삼을 공간도, 목표도, 목적지도, 끝도 궁극적으로 없을 것이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라는 것만 절대적이다. 아무런 절대적 좌표가 없는 우주 속에서 인간은 마침내 길을 잃어버렸다고 저자는 표현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본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지 않은가? 아인슈타인이 이전의 학자들보다 우주를 좀 더 잘 설명했을지는 모르지만 필연코 또다른 공간간의 잉태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5장 / 초공간(hyperspace): 왜 4차원에서 멈춰야만 하는가

    물리적, 기계론적 우주관에 신물이 난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비의 공간을 생각하였다. 즉 초 공간의 존재에 기대를 걸었다. 신의 존재가 완전히 삭제된 아인슈탄인의 상대론적 공간 너머에 초월적 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씨리즈 물 가운데 X파일이 횟수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심정을 잘 반영한다. "UFO가 실재하는가" 라는 논쟁은 끊임 없이 재기된다. 어느 심리학자의 지적대로 인간은 "신비의 양식"을 먹어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나보다.

    하지만 버트하임이 설명하는 초공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물리적 공간 너머의 신비한 어떤 곳이 아니라 오히려 더 철저하게물질적인 초 공간으로 아예 인간 존재 자체를 공간속에 녹여 버리는 것이다. 고차원 이론에서 존재하는 모든 입자들은 숨겨진 초차원들의 집합에서 생기는 진동으로 설명되곤 한다. 물체는 공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물체가 바로 공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재관에 의하면, 우리가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왜냐하면 결국 무조화된 무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만은 중력이 보이지 않는 4차원에서 우리의 3차원 우주가 구겨져서 생긴 결과라고 생각했다. 5차원 이론을 제창한 칼루자는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과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 즉 빛의 場 방정식을 마치 퍼즐게임의 조각그림을 맞추듯이 완벽하게 결합하였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공간의 모든 점은 사실 작은 원이다. 그래서 실재로는 공간의 네가지 차원이 있으며, 거기에 시간의 차원을 하나 더하면 총 다섯개의 차원이 있다는 이론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선이 아니라 사실은 2차원적 원통 표면이라는데...

    지난 10년 동안 우주는 총 11차원으로 되어 있다는 견해가 새롭게 제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11차원 우주론의 가장 급진적인 점은 모든 힘들뿐만 아니라 물질도 공간기하학의 부산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칼루자-클라인의 이론을 확장한 이 11차원 우주론에서, 물질은 초공간의 조직 위에 잡혀 있는 주름일 뿐이다. 또한 원자를 구성하는 亞원자 입자들도 동그랗게 말려 있는 7차원의 특성으로 모두 설명한다.

6장/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 우리 모두 영원토록 천사가 될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물리적 현상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물리학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그러한 법칙의 한계에 의해 제한되지도 않는다. 특히 이 새로운 공간은 물리학자들의 초공간 복합물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공간의 개념 자체는 지금까지 거의 이해된 바 없는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이다. 사이버 스페이스는 인류가 인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질적으로 다른 공간이다. 예를 들어보자. 사이버 공간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요소는 디지털 신호를 생산하는 컴퓨터와 이들을 빠른 속도로 이동시키는 통로인 전화선뿐이지만 MUD(Multi User Domain)게임을 통해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은 물리적인 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머드 게임 속에서 접속자들은 성과 지역, 인종, 나이, 학력, 외모 등에 있어서 완전히 동등하다. 내가 남성이지만 여성 아비타(자신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인물 아이콘)를 내세울 수 있다. 따라서 가상공간에서는 단순히 아비타만 보고 남성과 여성을 구별 할 수 없다. 국경과 신분, 성별 등 모든 것을 초월하여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 가상 공간에 모여서 서로 돕기도하고 경쟁하기도 하면서 게임을 즐긴다. 그 공간 안에서 새로운 사이버 공동체가 형성되기도 한다. 사이버 공간도 일종의 공동체 사회이기 때문에 규율과 질서가 발달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매우 무례한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나무라거나 심지어 따돌려 상대를 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구환경 보존 단체처럼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앞으로 가상공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면서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만약 가상공간이 오관을 자극하는 수준으로 발달한다면 인류는 가상공간과 현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순전히 물리주의적인 세계상에서 거부당한 인간의 비물질적 측면을 부분적이나마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사이버스페이스는 정신을 위한 새로운 영역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물질적 공간관에 질식해 가는 인간 영혼을 위한 공간을 발견한 것인데 사이버스페이스가 갖고 있는 커다란 호소력 중의 하나는 공동의 비물질적 세계를 중세와 달리 죽은 뒤의 저승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에서 구현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사이버스페이스는 인간 존재의 비물리적 팽창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보여준다. 인간영혼을 물질적 공간으로 환원 시켜버리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7장 / 사이버 영혼 공간(cyber soul-space): 매트릭스가 신이란 말인가

    공간에서 신의 자리를 삭제해 왔던 서구의 공간관에 진절머리가 났던 사람들에게 사이버 공간의 출현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사이버 공간 속에 영혼의 자리가 있다고 믿고 있다. 때를 같이하여 인간의 유전자가 완전히 해독됨에 따라 자신의 정보를 디지탈 신호로 바꾸어 컴퓨터에 입력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상상이 가능해 진 것이다. 매트릭스라는 영화는 이러한 주제를 다룬 영상이다. 인간의 본질을 육체로부터 분리하여 반영구적인 컴퓨터 코드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물질적인 육체와 영생의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비물질적인 본질로 구성된 이원적인 존재라는 믿음으로 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8장 / 사이버-유토피아(cyber-utopia): 경계를 초월한 천국의 성스러운 도시처럼

    사이버 유토피아에서 디지탈 신호로 바뀐 내가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인가? 서구인들의 공간에 대한 상상력은 사이버 유토피아에 이르고 있다. 버트하임(2002/1999)은 완벽한 세계는 어쩌면 ‘천국의 문’이 아니라 닷컴(.com)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전자통로 뒤에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물질과 정신을 모두 인터넷에 담을 수 있다는 서구인들의 환상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모든 공간은 필연적으로 특정 공동체의 산물이기 때문에 사이버스페이스 역시 그것이 유래된 사회를 반영한다. 최종적이거나 최상의 공간 개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이러한 끊임 없이 환상적인 현상들의 새로운 측면을 부단히 발견해 나가는 끝없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의 공간 개념의 산물인 것이다.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공간관은 시대마다 패러다임이 바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한 시대의 문화의 자녀로 작품 속에 필연코 그 시대의 공간관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서사문학을 분석할 때 작가가 작품 속에 창조한 공간이 어느 시대의 패러다임의 반영인지 먼저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 이어령 교수의 [공간의 기호학]이라는 책을 통하여 문학작품을 분석하는데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공간 분석의 개념들을 익혀보자.

III. 이어령 교수의 공간의 기호학

    이어령 선생은 지금까지의 문학 연구의 방법에 있어서 가장 절실하게 요청되었던 과제들을 첫째, 무한한 문학 현상들을 어떻게 유한한 방법으로 기술할 수 있는가, 둘째는 그러면서도 그것이 다른 과학과 구별될 수 있는 자율성을 지닐 수 있느냐이며, 마지막으로 그런 이론들이 실제로 개개 작품들을 해석하는 데 있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느냐는 실천성으로 보고 "공간론"과 실천 비평사이의 갭을 메꾸고자 시도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연구하는 청마의 시는 총 599편으로 전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비평학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난해한 책이지만 문학작품을 실제로 분석하고 독서지도 하려는 이들이 기본적인 개념이라도 익힌다면 훌륭한 도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저자가 디지인한 제목을 따라가면서 글 분석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간략한 설명을 곁들이고자 한다.

1. 수평 공간의 기본적 구조
    오른쪽 그림에서 보듯이 기본적인 공간의 분절은 상(上)과 하(下)가 대립되고 내(內)와 외(外)가 대립된다. 상하, 내외가 교차하는 가운데 점은 경계영역이다. 화살표는 시점의 방향을 가리키고 동그라미는 공간 영역을 표시한다.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해 보면 상-중-하로 수직축이 삼원 구조로 분절되어 있고 내-경계-외로 수평축이 상원 구조로 분절되어 있다. 이처럼 구조화된 공간 구조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동선이 묘사된다. 이 때 어느쪽에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창출된다. 즉 아래에서 위로 움직임, 위에서 아래로의 움직임, 상하 반복적인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 또 수평축을 중심으로볼 때 안에서 밖으로움직임, 밖에서 안으로의 움직임, 내외 반복적인 움직임이 있다. 작품 속에서 등장 인물들의 동선은 독특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어령(2000)에 따르면 "현시적이든 잠재적이든 우리는 시조를 읽을 때 이상과 같은 수직, 수평 여섯 영영으로 공간을 분할하여 인식하게 되고 각기 그 장소나 공간에서 어떤 관념, 정서 그리고 암시적인 의미의 지향성을 체험하게 된다"(p.21)는 것이다.

     수평공간의 분절에 관하여 이어령은 로트만이 정리한 내용을 도표로 소개한다(p.268). 맨 상위에는 문화적 텍스트(cultural text)가 있고 그 아래에 하위 텍스트가 있다. 이는 작가가 작품 속에서 창조하는 공간이 문화와 또한 그가 속한 하위 문화의 영향을 반영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하위 텍스트는 다시 부동적 텍스트와 동태적 텍스트로 나누인다. 전자는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고 후자는 "무엇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가?"라는 물음에대한 답이다. 양자는 물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구조로서 부동적 텍스트는 다시 상(연속)-중(경계)-하(인접)로 분절된 수직적 텍스트와 외(연속)-경계-내(인접)으로 분절된 수평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부동적 텍스트와 대조적인 동태적 텍스트는 다시 상-->하운동, 상<--->하, 상<---하 운동으로 분절된 수직적 텍스트와, 외-->내, 미로, 그리고 내-->외로의 움직임으로 분절된 수평적 축을 가진다. 이상의 내용을 도표로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속에 세계의 구조를 창조한 다음 그 공간 속에서 인물들이 움직이도록 치밀하게 디자인 함으로써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몇 가지 대표적인 공간들을 살펴보면 작품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공간 분석에 도움이 되는 개념들

1) 하늘과 땅, 상과 하의 대립 구조
    인류가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공간은 수평공간인 땅과 수직 공간인 하늘이다. 문화인류학적 견지에서 볼 때 어떤 문화권이든지 수직공간과 수평공간은 구별된다. 수평적 공간은 소유와 구속의 현실적 공간을 의미하고 수직적 공간은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자유로운 초 현실적 공간을 나타낸다. 때문에 원시적 생활의 척도법에서는 수직과 수평의 길이를 재고 표현하는 단위가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 수직을 잴 때는 "길"이라는 단어를 썼고 수평인 경우에는 "발"이라는 척도를 썼다. 그러므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고 하지 '열 발 물 속은 알아도 한 발 사람 속은 모른다'라고 하지 않는다.     탈무드에 따르면 유태 문화의 공간은 사유지, 광야(사람이 살 수 없는 곳), 공공장소, 그리고 자유의 장소 등 네가지로 분류하지만 그것을 재는 방식은 수직과 수평을 엄격히 구분하였다. 영국의 경우는 야드(yard)는 주로 수평적 공간을 재는데 쓰고 피트(feet)는 주로 수직적 척도법에 많이 쓰였다. 그런데 같은 수직이라도 방향에 따라 상방을 잴때는 피트를 수심이나 광산의 밑바닥 같은 하방을 잴때는 래덤(fathom)이라는 특수한 단위법을 사용한다.

     특히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직립적 자세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직공간은 수평 공간과 대립적 가치를 부여해 왔다. 수평/수직은 곧 자연/문화, 현실/초현실, 물질/정신, 수동성/능동성의 대립적 상징성을 나타낸다(p.48). 따라서 수직과 수평은 바로 공간이 언어가 되는 이항 대립 체계의 가장 상위에 놓인 별별적 특징으로 공간이 언어가 되게 하는 체계의 기본틀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수직과 수평으로 구성된 공간 구조에서 등장 인물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의미가 생성된다. 예컨대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성육신 하신 하나님"으로 성경은 소개한다. 반면 구약의 인물들 가운데 에녹과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은 채 하늘로 올라간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광야에서 잘 때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꿈을 꾼다. "갈매기의 꿈"에서 조나단 시걸은 끊임 없는 수직 비행연습을 한 끝에(그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비행이었다) 현실 공간을 초월한 참으로 나는 법을 깨우친 갈매기들이 있는 곳에 도달한다. 그의 수직적 움직임은 단순한 비행 연습이 아니라 끊임 없이 더 높은 자아실현을 지향하는 조다난 시걸의 내면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그가 그곳에서 살기를 포기하고 다시 자신이 태어난 바다로 돌아 왔을 때 더이상 옛날의 그가 아니었다. 성경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뿐 아니라 많은 문학작품들 수직과 수평으로 분절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매개항과 삼원 구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항이라는 삼원 구조는 매우 광범위하게 관찰되는 공간구조이다. 상위 공간과 하위 공간을 잇는 매개항은 매우 다양하다. 무당들이 자신의 집에 꽂는 대나무는 그가 하늘과 땅을 잇는 신들린 존재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적 매개항은 특히 기독교 성경에서 무수히 나타난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하님의 현현을 체험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하나님의 사람으로 정체성을 확립했으며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 돌판을 받았다. 선지자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극적인 승리를 거둔다. 예수께서는 산에서 천국 복음을 들려주시고 주로 산에서 기도하신다. 변화산에서는 용모가 변화되는 가운데 신비한 회동을 가지신다. 출애굽 당시 중요한 매개항은 구름기둥과 불기둥, 성막이었다. 후에 성막은 솔로몬 성전으로 발전되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항으로서 중요한 공간이 된다. 성전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경외심은 거의 미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즉 성전이 그들에게 있는한 어떠한 적들의 공격과 천재 지변에도 안전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성전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본질임을 그들은 비싼 댓가를 치루고서야 깨우치게 된다.

매개항이 반드시 깃발, 깃대, 혹은 산과 같은 사물인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경험 속에서 중요한 매개항은 모세를 비롯하여 엘리야, 이사야, 에스겔 등 기라성 같은 선지자들과 제사장, 그리고 기름부어 세움을 받은 왕들 이었다.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항의 극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하나님을 보여 주시면 내가 믿겠다"라는 제자의 요청에 예수께서는 "나를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명쾌하게 답변하신다. 톨스토이가 수집하여 편집한 러시아 민화들에서 매개적 역할을 하는 인물들로 천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작품에서 벌레로 이루어진 기둥(들)은 매개항의 대표적 사례이다. 벌레 기둥은 하늘에 닫고자 하는 벌레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기둥들로서 밑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벌레들을 짓밟고 힘겹게 올라갔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기둥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결코 밑에 있는 벌레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데 가장 꼭대기에 있는 벌레들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는 것은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항으로서 벌레 기둥은 사실 허무한 것이다. 참으로 하늘과 땅을 잇는 비결은 벌레 기둥을 포기하고 고추가 된는 과정을 통하여(극도의 두려움을 넘어선 결심이 필요하다!) 나비가 되는 것이다.

3) 수직적 초월 공간
    이어령(2002)은 청마의 시에서 기(旗)가 지닌 상징적 의미를 주도면밀한 공간구조 분석을 통하여 "수직적 초월공간"이라고 말한다. 청마의 [旗빨]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永遠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純情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理念의 標ㅅ대 끝에
哀愁는 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

인류의 의식구조에 있어서 초월공간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초월공간은 우리 삶에 어떤 절대적 표준을 제공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고 삶에 중심을 세워주기 때문이다. 어떤 부족은 마을 중간에 장 대 하나를 세워 놓고 우주의 중심을 삼는다고 한다. 그 장대는 초월적 공간인 하늘을 가리킨다. 기독교인들은 특히 초월적 공간의 개념이 강하다. 구약성경에서 야곱은 광야에서 돌베게하고 잠을 잘 때 천사가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꿈을 꾸고 바로 그곳에 자신과 함께 하나님이 임재해 계심을 깨닫는다. 그곳을 벧엘(하나님의 집)로 명명하고 벧엘은 일생동안 야곱의 삶에 있어서 중심공간 역할을 한다. 어떤 면에서 초월공간은 매개항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있다.

4) 공간의 차원과 그 계층론
    근대 기계론적 우주관을 주창한 과학자들은 온 우주가 균질의 텅 빈 공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많은 동서양의 많은 문화적 맥락에서 공간은 결코 균질의,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텅빈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공간에는 층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불교의 낙원과 지옥의 개념이나 중세기의 천국, 지옥, 연옥의 개념들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어령은 청마의 시들에서 공간의 층계적 구조들을 세밀하게 분석해 보이고 있다. 문화인류학에서 나타난 공간의 층계적 분절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우주공간: 상-지고의 세계, 중-상위 세계, 하-하위 세계
(2)도시/촌락공간: 상-높은 반족의 마을(천), 중-낮은 반족의 마을(지), 하-낮은 반족의 마을(수)
(3)집=주거공간: 상-지붕(돔), 중-기둥(열주), 하-지하실(거실, 지하 기타)
(4)몸=신체공간: 상-두부, 중-흉부, 하-복부. 다시 두부에서도 이마나 눈(상), 코(중), 그리고 입(하) 등으로 구별하고 코도 세분하여 코뿌리(상), 콧날(중), 코끝(하)로 구별할 수 있다.

사실 공간은 반드시 물리적 높 낮이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서울로 올라간다고 표현한다. 부산에서도 "서울로 올라간다"라고 하고 강원도에서도 "서울 올라간다"라고 한다. 한 집 안에서도 공간은 층위별로 분리되어 있다. 방안이나 식탁에서 아버지가 앉는 자리가 따로 구별되어 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청마의 시에서는 나-->몸-->집-->도시-->우주의 등식으로 공간의 층위를 배열한다. 구약성경의 요나서는 공간의 층위를 매우 잘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니느웨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명령을 받은 요나는 민족적 반감 때문에 니느웨로 가는 길과 반 대 방향인 다시스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한다. 바다로 나가서 배를 탄다. 그것도 맨 밑창에서 깊이 잠이 든다. 풍랑이 일자 누구 때문인지 재비 뽑기가 실행되었고 요나가 걸린다. 요나는 이실직고하고 자신을 들어서 바다에 던지면 풍랑이 멎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고 큰 물고기가 그를 삼킨다. 요나를 삼킨 물고기는 바다의 심연으로 내려가 산의 뿌리까지 그를 데리고 간다. 즉 요나는 내려갈 수 있는 끝까지 나락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스-->바다-->물고기 뱃속-->산의 뿌리로 분절된 계층 공간 구조를 보된다. 요나의 내려가는 움직임을 통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반대로 내려가는 삶의 도달하는 종착점의 어두움, 고통, 절망 등을 생생하게 본문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요나가 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했을 물고기는 그를 육지에 토해낸다. 그는 니느웨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고 거기서 민족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침 받는다.

5) 수평 공간의 구조와 [내]공간
    지금까지 신화적 공간은 대개 세계 어느 곳에서도 7이라는 숫자에 의해서 기술되어 왔다고 한다. 즉 즈니 족은 세계의 총체적 공간을 상의 세계와 하의 세계, 동, 서, 남, 북의 사방위 그리고 세계의 한 복판인 중앙 이라는 7개의 영역으로 분할한다. 이러한 주니 족의 신화적 공간은 보편적인 것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공간 분절과 조금도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음양오행의 토착 사상에서는 東-木, 西-金, 南-火, 北-水, 중앙-土로 되어 있고 거기에 땅(陰)과 하늘(陽)을 합쳐 일곱 단위의 세계를 형성한다(p.263). 수직 공간에 비하여 수평공간의 분절은 훨씬 복잡한데 보통 사람들이 나침반을 보지 않고 정확한 방향을 인식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중심으로 전후좌후로 방향을 분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화적 텍스트는 천체나 지형으 자연조건을 기준으로 하여 공간을 분절하는데 반하여 예술 텍스트는 기호 사용자의 신체성을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경향성이 농후하다.

수평적 공간에서 움직임 가운데 하나인 내/외 공간은 매우 흔하게 관찰된는 공간구조이다. 청마의 시 [대구에서]의 반짇고리는 집-->방-->안방-->반짇고리로 내 공간의 가장 은밀하고 축소화된 공간을 상징한다. 내공간(중심공간)을 중심으로 밖으로 이동하는가 혹은 중심으로 이동하는가는 텍스트 안에서 전혀 다른 상반된 의미를 지닌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에서 주인공 소년은 나무를 끊임없이 멀리 떠나는데 나이가 들어 갈 수도록 더 멀리 더 오랫동안 떠난다. 그렇지만 멀리 떠날 수록 그는 불행해지고 나무 역시 주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행복하지 않음을 느낀다. 마침내 나무도 줄 것을 다 주고 그루터기 뿐이고 소년도 늙어서 더이상 요구할 것이 없을 때 둘은 어릴적 함께 놀던 중심 공간에서 함께 만난다(늙은 소년이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쉰다). 그때 나무는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이 야기를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얼핏 생각하면 끊임 없이 주는 희생적 사랑을 예찬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공간구조를 분석해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음의 행복"을 예찬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도 중심공간(내공간)으로부터 어떻게 이동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가나안 땅을 중심으로 거기서 멀어질 때와 가까와 질때의 신앙상태가 다르다. 야곱에게 있어서 중심공간은 벧엘이다.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중심 공간은 복음서마다 다르게 묘사된다. 마가복음에서는 단연코 갈릴리 호반 도시인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사역하신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사역하신다.

6) 도주의 길과 [외] 공간
    프로이드는 Heimlich와 Unheimlich를 대립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전자는 집에 소속있는 것으로 낯익은 것, 길들여진 것, 확애애한, 고향을 느끼게 하는 것등으로 마음에 푸근한 것, 느슨한 것, 그리고 고향을 생각케 하는 것, 담으로 둘러쳐져 잇는 숨겨진 것, 감춰진 것등을 의미하는 공간이다. 아늑한 거주가 베풀어주는 고요한 만족감, 기분좋게 차분한, 든든한 보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p.340). 반면 후자는 견디기 어려운 불안에 빠져 있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 기분이 으스스할 정도로 을씨년 스러운, 숨겨지고 감춰져 있어야 할 것이 겈으로 드러나 있는 경우이면 모두 Unheimlich라고 불려진다. 전자를 탄생공간, 후자를 도주의 공간을 볼 수 있다. 청마의 시에 있어서 도주의 공간은 흔히 바다, 사막, 광야 등으로 형상화되어진다.

    다음 절에서 논의하게될 탄생공간으로 회귀와 도주 공간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탄생공간으로부터 외공간으로 이동이 도주의 공간이라면 다시 돌아오는 것은 회귀이다.

성경에도 도주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이야기는 요나서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끝없이 도망하고자 했으나 결국 붙들여 그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인물로 묘사된다. 출애굽기는 도주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단지 그 도주의 공간이 주는 의미가 청마의 시에서처럼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는 애굽의 기름진 가마솥 만 못하지만 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축복의 공간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5장에서 둘 아들은 유산을 일찍 요구해서 먼 타국으로 떠나간다. 그곳에서 모진 고생을 겪은 다음에서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온다. 가나안땅의 기근을 피해 에굽으로 내려간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아내를 빼앗길 뻔한 수모를 당 한 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나안 땅에 돌아온다. 이처럼 성경은 중심공간으로부터 이동을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한편 도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 많은 문학작품들이 있다. "쇼 생크 탈출", "러미제라블" 등등.

7)탄생공간으로 돌아옴
    탄생공간으로 돌아오는 공간 구조역시 작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 안도현의 [연어]에서 은 빛 연어는 바다를 출발하여 초록강을 거쳐 폭포를 뛰어 넘고 마침내 탄생공간으로 돌아온다. 자가는 바다-->초록강-->폭포-->연못 이라는 물리적 공간구조를 작품의 큰 줄거리를 구성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각 공간마다 은빛 연어가 겪는 사건의 내용과 의미가 다르며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점점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방식으로 구성하였다. 생떽 쥐베리의 "어린왕자"역시 탄생공간으로 회귀라는 공간적 구조를 설정한 대표적 작품이나. 어린 왕자는 자기 별에 탄생한 장미와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별(탄생공간)을 떠나 순례의 길을 걷는다. 여러 별을 거쳐 지구에 도착한 어린왕자는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 관계의 소중함과 장미와 맺은 관계의 의미를 깨닫고 길들인 장미에 대하여 책임을 지기 위해 귀향한다. 누가복음 15장에서 둘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 받아 먼 나라에 가서 흥청망청 탕진하고 알거지 신세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들어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되지를 치는 일꾼으로 전락한다. 그곳에서 뉘우치고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아버지는 둘 째 아들이 다시 돌아온 것을 너무너 기뻐하면서 큰 잔치를 베푼다. 탄생공간으로의 회귀는 특히 불교문학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 공간 구성이 불교의 순환론적인 역사관을 잘 반영해 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8) 경계 영역과 해체 공간
    공간구조가 항상 선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작가의 중심 생각을 드러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공간을 해체할 수도 있다. 청마의 시에서 공간의 경계를 해체하는 상징물들은 눈, 안개, 바람 같은 것들이다. 사실 실제적인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공간이 항상 질서정연하게 분절되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생존과 애국심 이라는 경계선상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갈등하는 주인공이 있을 수 있다. 누가복음의 삭개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의식흐름 소설 기법을 통해서 현대 소설들은 공간과 시간의 해체를 시도한다. 실제 물리적 시공간과 우리 의식에서 흐르는 시간과 공간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우리 의식은 어떤 이미지나 생각이 순차적으로 질서 정연하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복합적으로, 이 공간과 저 공간이 무작위로 떠오를 수 있음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쨓든 작가가 작품 속에 질서 정연한 공간을 창조하든지 애매모호하고 무질서한 공간을 창조하든지 그것은 작가의 중심생각을 표출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IV. 나가는 말

    문학 텍스트는 그 자체안에 완벽한 사회(공간, 시간, 그리고 사회문화적 배경)를 창조하고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게 한다.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사회적 제약을 받듯이 작품 속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텍스트의 시공간과 사회문화적 배경을 분석하는 것은 곧 작품 해석을 위한 입체적 맥락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문학 텍스트 속의 등장 인물들이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아무렇게나 움직이며 되는 대로 말한다면 핍진성이 결핍되어 설득력과 감화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독자는 먼저 작품 속의 공간구조를 분석하고 등장 인물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혀 가는지에 주목함으로써 의미해석은 물론 복잡한 플롯도 쉽게 정리할 수 있다.

지금까지 문학작품 분석을 위한 공간구조 분석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탐구해 보았다. 실제 독서지도를 하는데 있어서 관건은 교사 자신이 책을 분석하는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글을 분석하여 주제를 파악할 능력이 있을 때 자신감을 가지고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것과 비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것은 그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 나이가 어릴 수록 문학작품을 사용하여 독서지도를 하게 되기때문에 이야기의 문법인 서사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이며 서사 이론 중에서도 공간분석 기법이 매우 유용하게 활용됨을 말하였다. 글을 분석하는 기술은 마치 자동차 운전을 배우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몸으로 숙달하여야 한다. 아는 것만으로 운전히 되지 않듯이 말이다. 아울러 더 넓은 공부를 위하여 참고 문헌에 있는 이상우 박태일의 연구들도 읽어 보기 바란다.

[참고자료]


  • 공간에 대한 백과사전적 정의(야후 백과사전에서)

  • Wertheim, M.(2000). 공간의역사. (박인찬 역). 서울:생각의 나무. (원서 1999년 발행)

  • 김종욱. (2000). 한국 소설의 시간과 공간. 서울: 태학사.

  • 박태일. (2000). 한국 근대시의 공간과 장소. 서울: 소명출판사.

  • 이상우. (1999). 소설의 이해와 작법. 서울: 월인

  • 이어령. (2000). 공간의 기호학. 서울: 민음사.
2002-11-09 15: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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