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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의 서사연구실 게시판입니다.

  서사와 설교
  이영식 [ E-mail ]
  

  • 글쓴이: 정인교
  • 이 글은 글쓴이의 책 내용을 홈페이지에 소개한 내용입니다. [저자의 책에 관한 정보]


    I. 새로운 요청으로서의 이야기식 설교

         1. 이야기식 설교에 대한 개념적 이해

    설교는 스타일과 내용이라는 그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변화하는 회중이라는 상황적 요인으로 인해 끊임없이 안주의 틀을 깨고 나올 것을 요청받아 왔다. 즉 기존의 전통적 설교로는 더 이상 말씀의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정체성을 온전히 유지할 수 없다는 인식이 편만하게 되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이야기식 설교(Narrative-Preaching)이다. 이 설교 방식은 매우 다양한 형식상의 폭을 보여주면서도 공히 이야기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교훈식, 강의식 설교와는 구별된다. 이야기를 새로운 설교의 대안으로 주장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이야기와 인간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의사전달에 있어서 이야기의 놀라운 효력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라이스(Charles Rice)에 따르면 성경은 지구 위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인간들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하나님의 자기 현현(顯現)의 이야기는 특정한 인간의 경험에 관한 특정한 이야기 속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서가 이야기를(The Story) 표현하는 이야기들에(stories) 대한 증언이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하는 데 이야기의 중요성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라이스가 옳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주석하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인간의 삶은 이야기로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으며 또 우리 경험을 이해하는 데 좋은 수단이 된다.

    이야기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신앙의 성격과 그것의 수용 사이의 상관성 때문이기도 하다. 흑인 설교가인 미첼(Henry Mitchell)은 설교자들이 오랜 기간 설교를 사람들과의 이성적인 사안(a matter of reasoning)으로 인식해 왔지만 그러나 이성적 의식은 인간성 가운데 철저한 신앙을 위한 가장 최소한의 측면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성적인 호소를 통해 정보는 제공될 수 있지만 그러나 신앙은 인식과는 다른 것이다. 신앙은 전 인간과 그의 모든 것 일체를 다 포괄한다. 합리성이 할 수 없는 것을 신앙이 일깨우고 준비하는데 이 신앙은 직관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며 직관과 연관될 때 그 신앙은 가장 효과적인 것이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야기가 신학의 주요 주제로 부상하게 된 것은 1970년대 이야기신학(Narrative Theology)이 발생하면서부터인데, 이야기식 설교학이 설교학의 한 부분으로 나타나게 된 더 직접적인 원전은 크라이테스(Stephen Crites)의 세미나 원고인 “경험의 이야기 특성”(The Narrative Quality of Experience)이다. 크라이테스로부터 촉발된 이야기와 설교의 만남은 그후 미국 및 서구의 설교학자들간에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으며 활발한 논의와 연구를 촉발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동조하는 것이 비교적 무리 없이 진행된 데 반해 이야기와 설교의 조합은 그 개념과 성격을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형식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당장 이야기인가 이야기식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원래 우리가 택한 ‘이야기식 설교’라는 명칭은 이야기 설교, 이야기체 설교, 설화체 설교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런 용어들은 story preaching, story-telling preaching, narrative preaching 등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처럼 명칭이 다양한 것은 아직 이 분야에 대한 학문적 정리가 완성되지 않았음을 반영하는 것이고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일차적으로 ‘story’와 ‘narrative’라는 두 단어를 동의어로 볼 것인가의 여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로우리는 내러티브를 특정한 스토리나 특정한 사건을 나타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단어로 보면서 이야기에 있어 공통적인 것 즉 줄거리의 흐름 수수께끼에서 시작하여 반전을 거친 다음 좋은 결과로 맺게 되는 과정은 항상 일정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전혀 다른 두 개의 프로를 보아도 줄거리 진행의 측면에서 변하지 않는 흐름을 갖고 있는데 그는 이것을 내러티브라고 본다. 사실 통상적인 용법에서 내러티브라는 말은 어느 특정한 스토리를 가리킬 수도 있으며 또는 어떤 구술용 대본의 기초가 되는 진행의 흐름이나 전형적인 줄거리 전개 양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로우리는 내러티브 내용을 말할 때에는 스토리를, 내러티브의 형식을 말할 때에는 내러티브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야기식 설교라는 것은 인물 사건 배경을 필수적인 요소로 갖는 ‘이야기’를 설교의 중심 축으로 하는 스토리텔링보다는 훨씬 광범위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즉 이야기식 설교는 이야기를 포함하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고 이야기 없이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틀만을 사용한 설교일 수도 있다. 이 설교 방식이 지향하는 것은 회중으로 하여금 마치 영화나 소설을 보는 것처럼 설교를 들어가면서 줄거리를 파악하게 하고 그 설교의 흐름 속에서 경험을 공감하게 하려는 것이다.

         2. 이야기식 설교의 기본 요소로서의 플롯

    이야기식 설교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는 플롯(plot)이다. 플롯이란 우리말로는 ‘얽어짜기’로 번역할 수 있는데, 부분과 부분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를 형성하게 될 때 그 이야기는 일정한 플롯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플롯이란 전체와 부분이 해설자의 의도에 따라 일정한 방식으로 조직적 관계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플롯은 문학 작품뿐 아니라 이야기식 설교에 있어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이 설교 방식이 일정한 진행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라이켄(Leland Ryken)이 플롯을 이야기의 중심부에 있는 갈등이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장치라고 정의했을 때 그것은 곧 이야기식 설교가 갖는 이야기성(Narrativity)을 충족시키는 필요충분 조건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플롯의 구성은 매우 다양하지만 현재는 마틴(Martin Wallace)이 독일의 프레탁의 이론에서 추출한 4단계를 규범적인 플롯의 모형으로 꼽는다: A―B―C―D. A-B에서는 해설이 제시되고 B에서는 갈등이 소개된다. B-C는 행동의 발생 곧 갈등이 복합 또는 발전되는 단계이며, C는 절정, 행동의 전환을 의미한다. C-D는 갈등이 해결되는 단계이다.

    해설은 발단이라고도 불리우는데, 플롯을 제시하기 위한 최초의 상황도입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바탕을 제시해 주는 단계이다. 해설 단계는 최초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상호 관계를 제시해 주며 앞으로 전개될 사건의 진행을 위해 사건 발생의 원인과 배경을 불완전하게 설명한다. 또한 이야기의 중심 사상이 암시되면서 다음 사건에 대한 지적 흥미를 야기시키는 단계이다. 성서 이야기에서 해설은 보통 배경이나 인물의 소개, 인물의 이름이나 특성 인물의 외관 삶의 양태나 그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설화를 이해하기 위한 세부적인 필요들을 소개하기 위해 이야기의 서두에 제시된다.

    갈등은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어떤 장애가 생겨 갈등이 생기고 복잡해지는 단계이다. 갈등은 주로 등장인물 사이의 대화를 통해 표출되거나 해설자에 의해 선정된 한 사람의 독백 또는 심리적 요인으로 드러난다. 등장인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관점의 불일치나 등장 인물 사이의 서로 다른 성격에서 비롯된다.

    절정은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위기라고 알려진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을 말한다. 이때 플롯에서 제일 중요시되는 갈등과 문제해결의 순간이 분기점을 이루는 전환점이 나타난다. 이 지점에 이르면 독자와 해설자 모두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대단원은 갈등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을 보게 되며 새로운 안정 상태를 이루는 토대가 마련된다. 물론 이런 토대는 최종적이거나 확정적이 아니어서 암시적일 수도 있다. 이야기는 절정의 순간에서 세 가지 다른 양상 즉 급반전 발견 그리고 파국을 맞이한다.

         3. 이야기식 설교의 형식

    이야기식 설교가 기본적으로 내용보다는 형식상의 그리고 구성 방법상의 문제라고 할 때 어떤 방식들이 개발되었고 또 사용되고 있는가? 사실 이 문제는 어느 하나로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이자 동시에 여전히 열려 있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어느 것이 이야기식이고 어느 것이 이야기식이 아닌가에 대한 합의조차 분분한 것이 이야기식 설교라는 장르가 처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플롯이라는 구성 인자는 모든 이야기식 설교의 전제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전제하에 어디에 강조점을 둘 것인가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 배열할 것인가 하는 것에 따른 다양성이 존재할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식들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로 로빈슨이 제안하는 방식이다: ① 쟁점(issue)을 발견하라 ② 쟁점을 탐구하라 ③ 쟁점을 재구성하라 ④ 쟁점을 해결하라. 여기서의 핵심은 쟁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회중이 마음속에 ‘생각하게 하는 문제의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설교는 아무 생각 없이 단지 ‘들려지는’ 설교가 될 뿐이다. 따라서 설교자의 주 임무는 쟁점을 추출하여 그것을 조합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존스톤(Sara Johnston)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 관한 설교를 통해 먼저 긴장 상태를 조성하고 제사장과 레위인의 행위 속에서 그릇된 긴장해소의 방법을 파악한 후 더 큰 바른 해결 방법 - 멈추고 도와 주라 - 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지는 또 다른 모순을 분석한 후 진정한 해결 방법 - 가서 이처럼 행하라 - 을 제시한다: 갈등 → 그릇된 해결(방법) → 계속되는 갈등 → 해결 → 새로운 갈등 → 진정한 해결.

    좀더 간단한 방식으로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통해 ‘부정 - 부정 - 부정’을 설교 전반부에 배치한 후 결론적으로 긍정을 제시하는 방법을 들 수 있다: ① 이것은 아니다 ② 이것도 아니다 ③ 이것도 아니다 ④ 그러나 이것이다.
    이 방법은 일견 이성적 논리가 경험보다 앞선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루시 로즈(Lucy Rose)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야기식 설교와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있지만 만일 논리적 끈을 유지한 채 소용되는 소재들을 이야기로 가져간다면 단순하면서도 훌륭한 이야기식 구성의 설교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식 설교의 형식과 관련하여 가장 분명한 유형을 제시한 것을 우리는 유진 로우리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이야기식 설교를 이끌어 가는 형식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분류한다:

    ① 스토리 진행 - 성경사건의 진행을 그 순서에 따라 그대로 옮겨 설교하기
    ② 스토리 보류 - 설교본문을 뒤로 미룬 채 현재의 관심사로부터 설교를 시작하고 그 다음 본문을 대입하여 진행하는 방식으로 본문이 익히 알려져 있어 놀라움을 주기 어렵다든지 전달에 어려움 있을 경우에 사용하는 방식
    ③ 스토리 유예(suspending) - 성경본문으로 시작하여 다른 무엇이 스토리 진행과정에서 돌출하는 방식 즉 스토리 흐름 선상에 있는 해당 본문을 떠나지만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그러나 만일 두 본문을 갖고 시작하여 어느 하나를 다루다가 다른 본문으로 가서 다시 돌아옴 없이 끝맺으면 이것은 스토리 보류에 해당한다.
    ④ 스토리 전환 - 기본적인 줄거리에 다양한 성경 기사 및 다양한 이야기를 줄거리에 맞게 동원하는 기법

    로우리는 이야기식 설교의 작성 단계를 다섯 단계로 상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설명한다.

         첫째, 평형을 뒤집어라.

    이 단계는 청중들을 설교의 주제에 참여시킴으로 그들의 평형감각(늘 갖고 있는 생각)을 뒤집어 놓는 단계이다. 로우리는 회중의 경청태도가 매우 다양하고 준비상태 역시 천차만별이라는 전제하에 존 듀이가 말한 “사고(thinking)는 심각한 문제점을 만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오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한다면 그 다음 회중이 경청하게 하기 위해서는 긴장감(문제)이 전달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너무도 자주 사랑의 손길을 펼쳐 보지만 되돌려 받는 것이라고는 멍들고 상처 입은 손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거부당할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그는 갈등이나 문제점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재료이기 때문에 설교 내용 및 설교제목은 항상 모호함과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설교를 열어가는 첫 단계의 목적은 청중의 마음에 모호함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며 끝맺음과 해명이 필요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모순을 분석하라.

    이 단계는 분석과 진단의 단계로 길이로 보면 가장 긴 단계이다. 로우리는 이 단계의 핵심어는 “왜 그런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 단계는 우리 설교 임무에 핵심적인 진단의 단계인데, 그는 왜 그런가를 물어보는 진단이야 말로 설교 내용뿐 아니라 설교구성을 유지해 나가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고 본다.

         셋째, 해결의 실마리를 드러내라.

    이 단계는 문제화된 이슈를 해결해 주는 어떤 설명을 찾는 단계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논점을 납득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이것은 기대하지 않은 곳으로부터(상식적인 기대) 오며 그것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다. 소위 역전의 발생이다.

    역전의 원리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형태로 가능하다: 원인-결과의 역전; 변화된 원인의 역전; 변화된 가정의 역전; 변화된 논리의 역전

         넷째, 복음을 경험하라.

    이 단계는 복음을 경험하는 단계이다. 일단 해결의 실마리가 드러나면 청중은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다. 로우리는 이 단계에서 특히 설교자가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소위 ‘복음의 누전’(the homiletical short circuit) 현상을 든다. 즉 회중은 해답을 빨리 듣고 싶어하고 설교자 역시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결과를 기대하라.

    로우리는 기존 설교의 구성은 모든 단계가 ‘헌신으로의 초청’으로 끌고 가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고 보고 이야기식 설교 역시 이 기능의 일단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조되는 긴장감이 설교의 70% 진행정도에서 깨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주목하면서 클라이맥스가 설교의 종결부에 나타나는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해결의 순간으로 그 위치를 정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나서 그 해결의 결과로 인해 문제를 다시 정돈하는 것이 설교의 ‘물음’과 동등한 역할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살펴본 다양한 방식들은 설교자들의 경향성, 본문의 구조, 회중의 이해력 등에 따라 자유롭게 채택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다양한 방식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식이 어떻든 우리의 설교는 살몬(Bruce C. Salmon)이 말하는 충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설교가 좋은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명확히 제한된 주제, 이야기 전개에서 단 하나의 관점, 발단에서 갈등 해결까지 잘 짜여진 구성, 실제적이고 회화적인 설명의 사용, 감정에의 호소, 소수의 인물, 직접적인 연설에 의존, 반복 사용과 결론 강조라는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II. 이야기식 설교의 다양한 방식

    최근 새롭게 부각하고 있는 이야기식(Narrative Preaching) 설교는 지금까지 300년 이상 서구 교회 설교의 핵심적인 설교방식으로 자리잡아왔던 대지설교(three points preaching) 방식의 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대지설교는 그것이 가진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주지적 설교 방식이라는 점에서 효과적인 전달에 많은 문제를 야기해 온 것이 사실이다. 즉 설교자가 미리 만들어 놓은 원리를 연역적으로 풀어가는 방식이다 보니 원리를 말한 뒤에 이어지는 설명이 설득력을 잃는 경우 회중의 주의를 집중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설교자는 이미 말할 것을 다 말한 상태이고 회중은 이미 들을 것의 핵심을 들은 상태이다 보니 설교의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설교자가 기울여야 하는 수고는 지대한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설교자는 수동적인 경청만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이야기식 설교는 그 근본 형태가 귀납적이다. 즉 설교의 전반부에 여러 다양한 상황들이 제시되고 그것들로부터 하나의 원리를 향해 나가는 방식이다 보니 영화와 소설의 전개방식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설교를 들어가면서 메시지의 감을 잡아 나가는 방식, 설교자와 함께 회중이 설교의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방식, 설교가 대지별로 끊어지는 조각교훈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작품으로 맥이 흐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내러티브 설교가 소개되기 전에도 대지설교를 하지 않고 이와 유사한 설교를 하는 분들이 없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곽선희, 김진홍, 옥한흠 목사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설교가 본격적인 내러티브 설교라 보기 힘든 것은 비록 형식으로 이들의 설교가 대지의 방식을 취하지 않고 있지만 설교에 흐르는 기본적인 정서가 주지적이라는 것이다. 즉 설교자가 만들어 놓은 결론을 논리적으로 차분히 풀어 가는 것일 뿐 회중이 문제의식 및 의문을 가지고 설교의 과정에 동참한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식 설교는 여전히 발전해 나가는 진행형의 장르이기 때문에 확정적인 형태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이 말은 이 방식의 설교가 그만큼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유진 로우리가 제시한 기본적인 네 가지 방식은 우리가 주목해 볼 만한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스토리 진행(Running the Story) 방식이다.

    이것은 이야기 설교(Storytelling)라는 최초 방식에서 한 단계 발전한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야기가 들어 있는 본문을 택해 기록된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 처음 방식이었다면 이 방식은 화자가 해석 진단 평가를 겸해 가면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방식으로 설교하려면 먼저 이야기가 있는 본문을 택해야 하며 그 이야기로부터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추출해 내야 한다. 그런 다음 본문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차례대로 진행시키되 상상력을 통해 행간을 읽어냄으로 그 사건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 회중에게 그대로 전달함으로 사건을 함께 경험하도록 한다. 하지만 단지 성경이 전하는 본문의 사건을 진행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오늘의 유비되는 상황을 대입시켜 전개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본문이 갖고 있는 사건의 갈등 구조를 극대화시키고 해석된 핵심 메시지로 해답을 주는 것이 설교의 근간을 이루도록 하여야 한다.

    이 방식은 이미 회중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단순 반복할 수 있다는 약점을 노출시키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화자의 진단과 해석을 곁들이는 것이 필수이고 오늘의 회중이 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적절한 유비를 사용하여야 한다. 또한 마치 어린이들에게 동화식 구연설교를 하는 것처럼 상황에 대한 사실적이고 극적인 묘사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둘째는 스토리 보류(Delaying the Story) 방식이다.

    이것은 이야기가 있는 본문을 선택하지만 설교의 도입부를 본문으로 시작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상황으로부터 시작하여 본문으로 옮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 상황으로부터 시작할 때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부각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본문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한번 다루어 주면서(스토리텔링) 도입부에서 제기한 문제를 본문으로부터 다시 한 번 추출해 내도록 한다.

    그런 다음 이 문제를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갈등과 문제를 심화시키는 과정인데 이것은 주로 본문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가져가는 방법을 통해 혹은 또 다른 본문이나 오늘의 상황을 통해 가능하다. 그런 다음 설교의 핵심 메시지를 던져 주고 이것을 다른 본문 혹은 예화를 통해 두세 번에 걸쳐 재 강조해 준 다음 다시 간략한 정언적 정리로 끝맺도록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시지는 결코 길게 가져가서는 안되며 한 단락 정도(6-7문장)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른 성경이나 예화 등 자료의 변화를 시도해 이 메시지를 다른 각도에서 제삼 제사 취급해 줌으로 설교의 지리함을 극복하도록 하여야 한다. 시간적으로 메시지가 나오는 것은 설교의 70% 정도가 지나간 시점이기 때문에 자칫 회중의 집중력이 이완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한 소재로 지루하게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일차적으로 설교는 그 메시지가 얼마만큼 구태의연함을 벗어나는가가 설교의 성패를 좌우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 운용을 어떻게 가져가는가 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데, 특히 이 시점의 운용여부가 하나의 관건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세 번째는 스토리 유예(Suspending the Story)이다.

    이것은 이야기가 있는 본문을 택해 설교의 도입을 본문에 대한 이야기로(스토리텔링) 시작하여 오늘의 회중의 상황으로 연결시킨 뒤 다시 핵심적인 메시지를 본문으로부터 추출해 내는 방식이다. 엄밀히 말하면 스토리 보류 방식의 역순이라 할 수 있는데 처음 도입부에서 성경 본문을 상세히 다루되, 관찰식 진단식 진행을 통해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도록 한다. 그런 다음 오늘의 회중이 살아가는 상황을 취급하면서 본문에서 도출한 문제점과 동일한 것들을 회중의 상황 속에서 추출해 내도록 한다. 이어서 도출된 문제점을 확장시키고 갈등을 성숙시키는 과정을 갖게 되는데 다른 본문이나 예화 등을 사용하면서 문제점을 심화시켜야 한다.

    메시지의 제시는 갈등의 심화 다음에 나오게 되는데 이 때 메시지를 직접 이야기하기보다는 예화를 통해 먼저 인상지우고 그 다음 메시지를 제시한다. 이 경우에도 메시지는 한 단락 정도로 간략하게 제시하는 것이 좋으며 다른 본문이나 예화를 통해 이 메시지를 심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네 번째 방식은 스토리 전환(Alternating the Story)이다.

    이 방식의 특징은 앞의 세 경우와 달리 설교 본문이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은 것이라 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서신서나 예언서 등과 같이 사건이나 구체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은 본문을 이야기식으로 만드는 데 매우 유리한 방식이다. 스토리 전환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다양한 예화를 수시로 동원하여 설교를 진행하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자료들은 성경 혹은 기타 예화를 망라한다.

    예화를 수시로 동원하면서 설교를 진행시키기 때문에 설교가 아닌 예화의 진열장 식으로 비쳐질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런 위험을 불식시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예화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주제의 명확함이다. 이 주제의 끈이 정확할 경우에만 이런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스토리 전환 역시 처음 도입부에서 한 단락 정도의 짧은 예화 3-6개를 동원하여 설교자가 제기하려는 문제를 집중 부각시킨다. 이 경우에도 사용되는 예화들이 점층적으로 처리되어 강도를 더해 가는 것이 좋은데 예를 들어 어려움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려는 경우 일상 생활의 어려움, 신체의 불편에서 오는 어려움, 가치관의 혼동에서 오는 어려움 등으로 심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마지막 부분에는 본문으로부터 나오는 문제를 다루도록 하며 그것을 풀어가기 위해 즉 메시지를 도출하기 위해 먼저 예화를 들어 인상을 지우고 그 다음 본문으로부터 메시지를 제시하도록 한다.

    앞의 두 경우와 마찬가지로 메시지의 제시는 짧게 처리하되, 예화와 다른 성경을 통해 보완하도록 한다. 예화를 많이 쓰게 되면 설교의 깊이 있는 논구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 설교자는 주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네 가지 방식은 모두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설교의 도입부에서 문제 및 갈등 구조를 제시하고 설교의 후반부에서 메시지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것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문제의 제기 및 메시지의 제시라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가진 설교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봉우리와 두 번째 사이에는 문제와 갈등의 심화라는 산골짜기와 산등성이가 자리잡게 되는데 얼마나 골이 깊은가 산등성이가 가파른가에 따라 설교의 메시지가 - 이것은 결국 반전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 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회중으로 하여금 당연한 설교가 아닌 생각하게 하는 설교가 가능하며 따라서 설교의 진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야기식 설교의 장점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전하려는 메시지를 가급적 단출하게 지시한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설교의 문제점은 바로 이 메시지의 제시가 설명 일변도로 흐르면서 그 길이가 상당히 길다는 것이다. 이야기식 설교에서는 이것을 가급적 짧게 줄이되 예화와 다른 본문이라는 소재의 변경을 통해 메시지를 다른 각도에서 재 강조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대지설교가 그 메시지의 분명함을 특징으로 갖는다면 이야기식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가 갖는 구성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회중 입장에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설교자는 이런 문제를 잘 파악하여 전하려는 메시지를 강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결론을 열어 놓고 회중에게 맡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것은 우리 설교 현장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라 할 수 있다. 또 신언을 인언으로 전달하는 것이 설교이고 보면 메신저인 설교자가 분명한 메시지를 회중에게 전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우리 설교자들은 지금까지 대지설교라는 한 가지 방식에만 너무 안주해 왔다. 만일 그렇게 한 가지 방식만 쓰는 것이 설교자가 설교를 작성하는 데 편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회중에게 전달하는 데 최선의 방식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만일 전자가 그 이유라면 설교자는 어서 빨리 그 편안함을 벗어버리고 그 구태로부터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대개는 설교자만 만족하고 회중이 외면하는 설교이기 쉽기 때문이다. 설교자들이여, 분명히 기억하시라! 깊이 있는 메시지를 추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라. 그런 다음 그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레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라. 그 심사숙고의 과정에 이야기식 설교 방식을 끼워 줄 수 있다면...

    [출처:http://sgti.kehc.org/data/person/ikjung/millenium-sermon/]-글쓴이의 설교에 관한 내용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 2002-11-17 16: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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