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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의 서사연구실 게시판입니다.

  윤석호 감독의 사계절 씨리즈 드라마를 보고
  이영식
  




윤석호 감독의 사계절 씨리즈 <겨울연가>, <가을동화>, <여름향기>, 그리고 <봄의 왈츠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나는 시간을 들여서 모든 작품을 끝까지 보면서 윤석호 감독의 독특한 서사적 코드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느끼는 대로 여기에 메모해 두고자 한다.

1. 사랑의 사각관계

윤석호 감독의 사계절 씨리즈의 인물설정은 사각관계라는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각 작품에 등장하는 네 사람의 인물리스트와 역학관계를 살펴보자.

<봄의 왈츠> 박은영(한효주), 이수호/윤재하(서도영), 송이나(이소연), 필립(다니엘 헤니)

은영과 재하(수호)는 어릴적 친구다. 은영의 수술비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호는 현지숙/윤명훈의 양자가 되어 외국으로 떠나고 만다. 은영이 수술에서 깨어났을 때 친어머니는 교통사로고 별세하시고 자신을 지켜주겠다던 수호는 온데간데 없다. 15년 후 저명한 피아니스트 윤재하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수호와 은영의 만남이 재개된다. 재하보다 일찍 은영을 알게된 필립은 은영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은영과 재하는 투닥투닥 싸우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가까와진다. 둘 사이를 지켜보는 필립은 괴롭다. 한편 송이나는 재하의 어릴적 소꼽친구다. 사고로 죽은 재하는 실은 이수호임을 모르고 옛사랑을 추억하면서 재하에 대한 사랑을 불태운다. 하지만 은영을 항상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재하로 인해서 고통을 많이 당한다. 이처럼 봄의 왈츠는 네 사람이 복잡하게 서로 얽혀있다.


<여름향기>유민우(송승헌), 심혜원(손예진), 박정재(류진), 박정아(한지혜)

혜원과 정재는 어릴적부터 절친한 사이다. 두 집안 어른들이 함께 사업을 했었는데 혜원의 아버지는 일찍 별세하시고 딸을 정재 아버지에게 부탁한다. 혜원은 어릴적부터 심장이 약해서 잘 뛸 수 없다. 심장이 튼튼해져서 마음껏 달려보는 것이 그녀의 소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심장을 기증하는 사람이 나타나 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다.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회사 일로 산행에 나섰다가 가슴이 뛰는 사람을 만난다. 유민우라는 사람이다. 둘은 자꾸만 만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때마다 둘은 가슴이 두근거린다. 혜원은 어릴적부터 자신을 사랑하고 약혼반지까지 받은 정재를 결코 배신할 수 없기에 민우를 볼 때마다 흔들리는 자신을 미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져든다. 또한 민우는 유학시절 정재의 동생인 정아가 마음 속에 품은 연인이다. 민우가 자기 대신 올케가 될 혜원을 사랑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온갖 방법으로 방해를 놓는다. 반면 정재는 괴로와하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혜원을 지켜주고자 한다. 이로 인하여 남매들은 갈등하고 다툰다.

나중에 자기가 이식받은 심장이 민우의 옛 애인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진다. 민우의 사랑은 혜원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옛 애인의 모습을 자신에게서 발견한 것이라 생각하고 민우와 결별을 선언한다. 그리고 정재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 마지막으로 혜원을 한 번만 보고 가겠다고 식장으로 오는 민우를 발견하는 순간 민우를 외쳐 부르며 혜원은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간다. 결국 민우는 떠나고 혜원은 인공심장을 이식하는 대 수술을 받으며 몇 년 세월이 지난다. 심장때문에 민우를 좋아하게 되었다면 이제 그 심장이 없는 지금 다시 민우를 만나더라도 심장이 뛸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몇 년 후 귀국한 민우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 둘의 심장은 다시 뛰기시작한다.


<가을동화>윤준서(송승헌), 윤/최은서(송혜교), 한태석(원빈), 최/윤신애(한채영)

은서와 신애는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준서가 아기 명찰을 떼어버린다. 간호사는 둘의 명찰을 잘 못 붙여 놓는다. 이들의 운명이 바뀌면서 다른 집안의 딸이 되어 한 반 학생으로 만난다. 둘은 언제든지 라이벌 관계이다. 은서가 교통사고로 입원하면서 일은 커지고 만다. 혈액형으로 볼 때 지금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의문을 품고 병원에서 조사해 보니 같은 날 태어난 아이와 바뀐 것을 알게된다. 우여곡절끝에 은서와 신애는 낳아준 부모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은서를 여동생 이상으로 사랑하는 준서와 길러준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은서 아버지는 미국행을 결심하다.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하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은 은서와 준서 남매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있다.

먼 훗날 이들 남매들이 성인이 되었을 무렵 준서 가족은 다시 귀국한다. 준서는 이미 장성하여 약혼자까지 있다. 하지만 옛 여동생 은서를 만나는 순간 둘은 남매 이상의 사랑에 빠진다. 한편 은서는 호텔에 교환수로 근무하는 동안 그 호텔의 이사 가운데 한 사람이며 경영주의 아들이기도 태석의 사랑을 받는다. 준서는 태석이 유학시절 만난 절친한 친구이다. 한편 신애는 유학시절 미국에서 준서를 만나서 깊이 사랑하게 된다. 신애 입자에서 볼 때 은서는 어린 시절 자신의 친 부모를 빼앗고,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 태석을 또 훔쳐가는 원수 같은 아이다. 이렇게 사각관계가 형성된다.

준서는 여동생 은서를 연인으로 사랑한다고 털어놓고 결혼시켜 달라고 하지만 집안의 거센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타의에 의해 둘은 헤어지기를 결심하는데, 은서가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음이 밝혀진다. 그녀를 살려보려고 태석은 수술을 권유한다. 죽어가는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준서인 것을 인정하고 태석은 준서를 불러 온다. 그리고 은서는 사랑하는 오빠의 등에서 생을 마감한다.

<겨울연가>강준상 (배용준), 정유진(최지우), 김상혁(박용하), 오채린(박솔미)

준상, 유진, 상혁, 채린은 모두 고등학교 학창시절 친구들이다. 채린은 준상을 짝사랑하지만 눈길한번 주지 않는다. 상혁은 유진을 짝사랑하지만 유진이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준상이다. 유진과 준상의 사랑이 무르익어 갈 무렵 준상이 갑자기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상하게도 장례식도 시체도 확인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모여서 자신들의 방법으로 준상을 떠나보낸다. 유진이 나중에 직장인이 되었을 때 학창시절 친구인 상혁이와 결혼을 약속한 상태. 어느 날 옛 사랑 상혁이를 그대로 빼닮은 민영이라는 사람을 일관계로 만난다. 민영은 상혁이를 본적도 알지도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유진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민영이 상혁을 닮았다. 하지만 민영은 유진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민영과 결혼을 약속한 사람은 채린이다.

실은 민영은 기억을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사람의 정체성이 이식된 준상이다. 그가 점점 자신의 옛 기억을 찾아가면서 유진을 알아본다. 둘은 급속도로 가까와진다. 상혁은 그런 유진을 보고 괴로와 하고 채린은 그런 민영이를 보고 괴로와한다. 과거 학창시절에도, 지금에 와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유진이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결국 민영은 과거에 부상을 입은 뇌에 문제가 발생하여 완전히 시력을 잃고 만다. 홀로 추억 속에서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민영(준상)을 포기하지 못한 유진이 드디어 그를 찾아내고 만다. 모진 눈보라 속에서 꺼질듯 하던 둘의 사랑이 포근히 내리는 겨울 눈 속에서 다시 활짝 피어난다.

겨울연가에서 특징적인 것은 부모 세대들의 관계가 복잡하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관계가 자녀들의 인간관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윤석호 감독의 사계절 씨리즈의 갈등구조는 4각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이 혈연과 학연, 어릴적 추억으로 얽혀있어 다양한 색채를 만들어 내고 있다.

2. 계절로 표현된 자연코드와 사랑

사계절 씨리즈 모두 우리 나라의 독특한 계절 정취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한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봄의 왈츠의 배경인 청산도는 정말 아름다왔다. 물론 섬 그대로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이미지에 맞게 색상을 입힌 것이라고 한다. 청산도의 보리, 유채꽃, 바다, 돌담길이 너무 아름답다. 한 화면 속에 노랑 유채꽃과 초록색의 보리 밭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조화를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등장인물들의 의상 역시 사계절의 분위기를 고려한 것이다. 봄의 왈츠에서는 주로 초록색과 자주빛 의상이 주로 등장한다. 가을동화의 멋있는 단풍, 겨울연가의 하얀눈, 여름향기의 싱그러운 숲 속 등 내 마음 깊이 묻어놓은 고향을 일깨우는 코드들이다.

특히 여름 향기의 안개 피어오르는 싱그러운 숲과 호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편안함과 휴식을 느꼈다. 서사에서 공간은 단지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배경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서사적 코드로 사용될 수 있다. 봄의 왈츠의 결말은 아직 모르겠고 여름 향기의 결말 부분을 보자. 서로 상대방이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두사람, 이식 받은 심장을 바꾸어 인공심장을 달았는데도 여전히 가슴뛰는 사랑은 여름이 아직 계절의 중심에 있는 것을 암시한다. 여름은 가을로 가는 길목이다.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과 비바람을 견딘 후 가을의 결실을 맺는다. 그러므로 여름 향기는 끝나지 않는 진행형의 사랑을 그려놓는다.

가을 동화를 보자.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것도 자신이 평생 사랑하고 가슴에 간직한 오빠의 등위에서 생을 마감한다. 다 익은 열매는 떨어져야 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한 잎새는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다음 떨어지는 것이 가을의 이미지이다. 마치 낙옆처럼, 열매처럼 그녀는 불꽃 같은 사랑을 불태우고 숨진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말 할 수 없이 큰 사랑을 흠뻑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등에서 죽을 수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죽음은 영판 가을의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한다.

겨울연가를 보자. 사랑하는 두 연인은 여러가지 장애를 만난다. 마치 겨울에 불어치는 북풍처럼 모진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산처럼 쌓인 눈도, 몰아치는 찬바람도 두 사람의 사랑을 얼려버리지 못한다. 결국 추운 겨울 산장에서 두 사람은 만나 끝내 사랑을 이루어 내고야 만다. 겨울의 두꺼운 얼음 속에는 생명이 숨쉬고 있는 법이다.

3. 무조건적 사랑 코드

윤석호 감독의 사계절 씨리즈의 갈등구조는 하나의 패턴을 이루고 있다. 남녀 주인공들은 어린 시절 혹은 학생시절 사랑했다가 어떤 사연으로 인해 헤어진다. 그 후 여자 주인공은 다른 연인을 만나서 사랑하거나 결혼까지 약속한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옛 사랑을 다시 만난다. 그녀의 두 번 째 애인은 첫번째 애인에게 자신의 여자친구를 빼앗길까봐 노심초사 한다. 처음에는 방해하고 협박하고 애걸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결국 그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보호해주기로 결심한다. 겨울연가에서 김상혁(박용하), 여름향기에서 박정재(류진), 봄의 왈츠에서 필립(다니엘 헤니), 그리고 가을 동화에서 한태석(원빈)과 같은 인물들이다. 이들의 무조건 적인 사랑은 오히려 주인공들의 느낌에 근거한 사랑을 능가하는 차원의 사랑을 보여준다. 예컨대 겨울연가에서 상혁은 유진(최지우)이가 자신의 옛 애인인 준상(민영)이를 다시 만나 흔들리는 그녀의 마음을 잡아보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유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 여름향기에서 정재는 혜원의 건강을 위해서 자신의 연적인 민우까지도 용납하고 그녀를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가을동화에서 태석도 마찬가지이다. 봄의 왈츠에서 필립은 은영과 재하(수호)의 관계를 다 알면서도 둘의 사랑을 도와준다. 재하에 대한 은영의 오해는 둘 사이를 갈라 놓고 자신이 은영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기회인데도 끝내 그러지 못하고 오해를 풀어주고야 만다. 둘의 가슴이 서로 뛰는 그런 사랑도 아름답지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행복을 가꾸어주는 사랑은 더 큰 사랑이다.

4. 기억과 정체성의 상관관계 코드

기억이란 무엇일까? 결코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사전적 의미의 기억은 경험을 보지(保持)하고 어떤 방법으로 이것을 재현하는 기능을 말한다. 이를 시간적인 경과로 세분하면 다시 1) 마음속에 어떤 것을 새겨서 기억하는 기명(記銘;memorization), 2)그 정보를 지속적으로 간직하는 보지(保持;retention), 3)기억하고 있는 것을 다시 회상하는 상기(想起;remember)의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우리 두뇌가 중심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기억과 정체성의 관계는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가 누구인가는 곧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의 총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윤석호 감독의 사계절 씨리즈에서 두드러진 코드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억과 정체성의 관계이다. <겨울연가>에서 상혁은 기억과 관련하여 세개의 정체성을 살아간다. 즉 본래의 상혁, 상혁으로서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다른 기억이 이식된 민영, 그리고 기억을 되찾은 민영이다. 유진이는 생물학적으로 볼 때 한 사람을 사랑한 것이지만 심리적으로 볼 때 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랑한 셈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민영과 유진이 일 때문에 부딪힐 때 그는 유진의 이상한 태도를 오해한다.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여자, 헤픈 여자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진이를 사랑하게 된다. 참 끈질긴 사랑의 인연인 셈이다.

<가을동화>에서 준서와 은서의 어린 시절추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미해결 과제로 남아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준서의 부모들은 이들을 멀리 떼어 놓으면 모든 문제가 잘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완전히 착각이었음을 밝혀진다. 오히려 준서의 부모는 은서의 이웃에 살면서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어야 했다. 준서 역시 이제 호적이 바뀐 은서를 바라보면서 감정을 정리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결별은 모든 심리, 정서적 문제를 미해결 과제로 남겨두게 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성인이 되어 다른 모습으로 만났다 하더라도 어린 시절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레모니는 심리정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산자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의식이다. 그것을 통하여 남은 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며 슬픔을 공식적으로 표출하여 감정을 정화할 수 있고 가족간의 관계를 재 조정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의식이 없이 갑작스레 떠나버리면 평생 가슴 속에 묻어 두고 보내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여름향기>에서는 보다 원초적이고 생물학적인 기억의 문제를 다룬다. 드라마 속에서 민우(송승헌)와 혜원(손예진)은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 서로의 가슴이 쿵쿵뛰는 것을 느낀다. 처음만난 사이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이끌리어 사랑에 빠지고 만다. 둘은 모르지만 독자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혜원은 어려서부터 심장이 약한 아이였는데 민우의 연인이 사고로 죽으면서 심장을 혜원에게 기증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혜원이 민우에게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은 민우의 연인의 심장이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우의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은 그녀의 심장에 새겨지고 그 심장은 민우를 만나자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장기를 이식수술하면 몸과 생활 습관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체질이 변하는 경우도 있고 음식 습관이나 배변 습관, 생활습관 등의 변화를 초래한다고 한다. 현대 과학은 사랑과 같은 마음의 현상을 모두 두뇌에서 처리하고 호르몬의 분비의 변화와 같이 생물학적인 차원으로 환원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사랑은 두뇌의 일을 넘어서서 세포하나하나에 새겨지져 몸이 반응하는 어떤 차원인 것일까?

조금 다른 차원이기는 하지만 실레스터 스노우버는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기도와 몸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통찰을 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몸은 참으로 하나님의 기적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놓여 있는 아름다움을 다시 찾고 발견해야 한다. 몸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런 기적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께 "예,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 흥미롭고 아름다운 그리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하나님과 함께하려고 합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이다(p. 59).>

절대자에게 기도할 때 단순히 우리 두뇌만 활성화 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분을 향해 반응한다고 본는 것이다. 기도의 이런 작용때문에 때로는 기도가운데 몸의 치유를 경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될 듯도 하다. 사랑할 때 우리 세포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여 모두 반응을 하며 그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여름향기의 혜원은 가슴의 반응과 머리의 반응사이에 많은 갈등을 경험한다. 가슴은 민우에게 반응하고 머리는 정재에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만약 머리의 기억과 심장의 기억이 다르다면 정말 곤란한일이다.

<봄의 왈츠>역시 기억의 문제는 변함 없는 주제로 등장한다. 어린 시절 은영은 수호를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수호 아버지는 자신의 수술비를 도둑질 해 간다. 그를 찾으로 서울로 떠났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신다. 자신을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수호는 심장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 보자 곁에 없다. 그후 15년동안 단 한 차례의 연락도 없다. 따라서 수호에 대한 은영의 기억은 애증의 감정이 겹쳐 있다. 드라마의 주된 모티프는 바로 이 감정을 풀어나가는 것이다.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인간관계는 대단히 중요한 주제이다. 때문에 이런 주제를 다룬 영화들이 상당수 보인다.

<메멘토>에서 주인공은 사고로 단 10분 박에 기억할 수 없는 기억력 저능아이다. 그 짧은 기억력으로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과 일어 났었던 일을 재구성 해보려고 몸에다 문신을 새기고 순간순간 메모하며 온 집안에 기록물로 가득채우며 안간힘을 쓰지만 별로 성공적인 것 같지 않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에 관한 또다른 관점으로 기억하기에 너무 고통스러운 경험을 선택적으로 지워버리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남자 주인공 조엘과 여자 주인공 클레멘타인은 여행중에 우연히 마주친다.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만 이상하게 끌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실은 사랑의 상처에 너무 가슴이 아파 기억을 전문으로 지워주는 회사를 통해 완전히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린 사이였다.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의식의 저 밑바닥에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기억을 지우는 프로그램에 안간힘을 쓰며 저항한다는 스토리이다.

윤석호 감독의 사계절 씨리즈는 이런 작품 못지 않게 기억과 정체성, 인간관계에 대하여 깊이 천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억은 당신 자신이고 그 기억은 사랑에 심원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윤감독의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5. 심각한 스토리에 쉼을 주는 부차적 스토리

이야기는 주된 사건과 부차적인 사건으로 엮어진다. 주된 사건이란 플롯의 진행에 있어서 뼈대를 이루는 것으로 인과관계의 사슬로 연결되는 사건들이다. 반면 부차적 사건은 그것이 없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것들이다. 부차적 사건은 이야기에 재미를 더해주고 심각한 스토리에 휴식을 준다. 사랑 이야기는 갈등을 전제로 할 때 긴장감과 재미가 있다. 하지만 계속 갈등, 긴장의 연속이라면 독자는 지치고 만다. 이 때 부차적 사건을 적절하게 삽입하여 독자에게 휴식을 주는 한편 재미의 요소를 더할 수 있는 것이다.

윤석호 감독의 사계절 시리즈는 주 사건과 부차적 사건의 균형감각을 볼 수 있다. 겨울연가에서 채린의 가게 점원으로 등장하는 공진숙(이혜은), 동물 병원 수의사로 등장하는 권용국(류승수) 등이며, 봄의 왈츠에서 홍미정(최지혜)와 박상우(최시원) 커플, 여름향기에서 오장미(조은숙)과 지대풍(안정훈) 커플 등이다. 또 가을 동화에서 은서의 호텔직장상사와 준서의 선배이자 화가 커플이다. 하지만 이들의 부차적인 역할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아서 가을동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겁고 심각한 편이다.

맺는 말


나는 윤석호 감독의 사계절 씨리즈를 참 재미있게 감상했다. 일단 아름 다운 자연배경이 내 어린 시절의 감성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마음의 휴식을 가져다 주었다. 또한 요즘 사랑이야기가 톡톡 튀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데 반해 잔잔하게 물이 흐르듯 진행되는 드라마의 속도도 내 코드와 맞는다. 물론 요즘 젊은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진행이 느리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뭔가 불륜을 저지르고 이상한 사랑은 잠시 독자의 시선을 사로 잡을 수 있겠으나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묵상하며 닮고 싶은 이야기는 되지 못할 것이다. 현실 세계 속에서도 분륜의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면에서 윤석호 감독이 집요하게 붙들고 있는 <순수한 사랑>코드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오래 오래 기억될 것이다.

2006-05-10 12: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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