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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 글모음 게시판입니다.

  말의 귀소본능, 아비가일 스타일
  이영식
  

아비가일 스타일

무릇 인간의 세치 혀는 복을 부르기도 하고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내가 매일 내뱉는 말 속에 생사화복의 열쇠가 있다. 말의 힘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사무엘상 25장에 등장한다. 갈멜에서 대규모 목축업을 하던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다. “아비가일”(אביגיל )은 기쁨의 아버지, 또는 기쁨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그녀의 부모가 딸을 낳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이름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문이 멸문지화 당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에 지혜롭고 당당하게 대처하는 그녀의 내적 힘은 필연 부모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당시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겨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바란광야를 떠돌고 있었다. 다윗은 갈멜에서 목축업을 하는 큰 부자 나발이 양털 깎는다는 소식을 듣고 수하 열 명을 보내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장정들과 그 식솔을 부양하기 위해서다. 그러자 나발의 입에서 거절과 경멸의 말이 튀어나온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삼하25:10-11). 다윗을 도망친 노예로, 어디 출신인지도 알 수 없고 근본도 없는 하찮은 존재로 폄하하는 말이다. 사람의 출신을 무시하고 비꼬는 경멸의 언어는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행위다. 그의 맹독이 서린 말은 다윗에게 그대로 전해졌고 맹렬한 분노를 야기한다. 다윗이 휘하의 부하 400명을 칼로 무장하게 하고 나발의 집안을 멸하기 위해 출정한다. 무릇 뱉어진 말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말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속성이 있다. 이를 언어의 귀소본능이라고 한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무장하고 나발을 치러 온다는 소식을 일꾼을 통해서 듣는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녀는 재빨리 먹을 것을 준비해서 다윗을 맞으러간다. 다윗을 보자마자 나귀에서 내려 그의 발 앞에 엎드리고 얼굴을 땅에 대고 말한다. 그녀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부디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②불량하고 미련한 사람 나발의 말은 무시해 주세요.
③ 당신이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습니다.
④ 당신을 해하려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⑤ 당신의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싸개 속에 싸여서 원수들이 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⑥ 여호와께서 당신을 후대하실 때에 나도 생각해 주세요.

아비가일의 축복과 격려와 비전의 언어는 다윗의 분노를 완전히 누그러뜨렸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소명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다윗은 그녀의 식견과 언어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그녀의 관점에 완전히 공감한다. 나발이 하나님의 책망으로 급사하자 다윗은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나발의 악한 말이 불러들인 화를 아비가일의 선한 말이 막아냈다. 더 나가서 그녀의 말은 사명을 완수하고 복을 안고 돌아왔다. 아비가일 스타일이다.


언어가 문화다.

인류의 문화는 언어를 날줄과 씨줄로 엮은 직조물과 같다. 언어가 없다면 “문화”(文化)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할 수조차 없다. 인류에게서 언어를 박탈한다면 다른 동물들보다 하등 뛰어날 것이 없다. 인류 사회는 곧바로 원시 사회로 돌아갈 것이다. 수많은 책과 법률, 경전, 역사와 문학, 과학, 방송도 토론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언어 속에서 태어나 언어로 살아가다가 유언을 남기고 삶을 마감한다. 그러므로 내 삶의 이야기 역시 언어로 지어진 집이다. 사태가 이러하기에 우리는 언어의 힘과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여 문화인으로 살기 위해서 아비가일 스타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비가일 스타일1: 좋은 단어로 나의 기를 살리라.
평소에 혼자 속살거리는 말이 사고와 감정, 기억, 행동,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수많은 심리학적인 연구를 통해 검증된다. 분노라든가 실패, 좌절, 실업, 폭력, 질병, 코로나19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듣거나 떠올리면 기분이 나빠지고, 반대로 성공과 희망, 취직, 평화, 활력, 여행과 같은 긍정적 단어를 떠올리면 금방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울증 환자에게 처방하는 “감사목록” 일지쓰기는 이러한 원리를 십분 응용한 것이다. 일주일 정도 내 마음에 스쳐가는 언어들을 종이에 써보고 긍정적인 것이 많은지 부정적인 것이 많은지 평가해보라. 부정적인 말로 기울어져 있다면 의지를 가지고 좋은 단어를 속살거리는 연습을 해보자. 좋은 시나 성경말씀을 암송해도 좋을 것이다. 선한 마음에서 선한 말이 나오고 악한 마음에서 악한 말이 나온다. 반대로 선한 말은 선한 마음의 자양분이 되고 악한 말은 악한 마음에 양분을 공급한다.

아비가일 스타일2: 축복의 말로 사랑하는 사람의 기를 살리라.
부부치료 전문가 존 가트맨 박사는 비난과 방어반격, 경멸, 담 쌓기 같은 언어습관이 부부관계를 해치는 맹독임이 있음을 수 천 쌍의 실제 부부를 정밀하게 관찰하여 밝혀냈다. 작은 구멍으로 물이 스며들어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듯 상대방을 비난하고 그 비난에 대하여 되받아치고 인격과 능력을 경멸하다가 문 꽝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건강한 관계도 결국 허물어진다. 아비가일의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칭찬하는 부드러운 말은 다윗의 마음을 열게 했다. 비난 대신 자신의 필요를 진솔하게 전달하고 반격대신 수용을, 경멸대신 칭찬을, 담쌓기 대신 다가가는 대화를 시도하라. 그런 말은 축복으로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아비가일 스타일3: 비전의 언어로 미래를 꿈꾸게 하라.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용서를 구걸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다윗이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의 길과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마음속에 한 폭의 영상이 떠오르도록 그림언어를 통해서 말이다. 하나님과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더 멀고 더 높은 시각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최선의 길을 선택하도록 촉구한다. 사적인 원한에 사로잡혀 직접 피를 흘려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길이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은 장차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 즉 왕으로 세우실텐데 그 때 허물 많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윗 자신조차도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참으로 대단한 해석 아닌가!

말에는 예언적이고 자기 충족적인 힘이 있다. 이 글은 2021년 도쿄올림픽 기간에 쓰고 있다. 어제 7월 29일에는 대한민국 여자 배구 대표 팀과 도미니카공화국의 예선전이 있었다. 이미 앞선 경기에서 패한 우리 대표 팀은 이 경기에 꼭 이겨야만 토너멘트에 진출할 수 있다. 중남미의 강호 도미니카 공화국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세트 점수2:2에서 마지막 5세트 15점을 다투는 경기에서도 한 점차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그때 우리 팀의 맡언니 김연경이 “우리 한번 해 보자. 우리 한번 해 보자. 우리 한 번 해 보자, 후회 없게...”라고 팀원을 격려하는 말이 카메라에 잡혔다. 우리 팀은 결국 15:12로 도미니카 공화국을 꺾어 예언이 되었다.

나의 말속에 내 인격과 관계, 사회와 문화, 더 나아가 하늘나라가 담겨있다.
2021-07-30 17: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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