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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 글모음 게시판입니다.

  웃음, 치유를 위한 신의 선물
  이영식
  

30대 초반, 신학대학원 재학생 시절 나는 4박 5일간의 집단 상담에 참여하고 있었다. 날마다 소그룹으로 모여 앉아 자신의 삶의 경험을 나누는 가운데 무의식적인 갈등을 탐색하는 과정이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성장을 축하하는 의식을 가졌다. 촛불을 켜고 동그랗게 모여앉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로 나와서 “나 아무개는 아무개 씨를 한 인간으로 수용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한 커플의 별명이 한 사람은 ‘당근’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오이’였다. “나 오이는 당근 씨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수용하고 배려하고.....” (하하하.... 당근이 오이를 사랑하다니.....!) 나는 뱃속으로부터 솟아나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분위기가 너무나 엄숙했기 때문에 폭소를 터뜨리면 실례가 될 것 같아 꾸역꾸역 웃음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어 삼켰던 것이다. 그때 밖으로 나가서라도 왜 큰 소리로 웃지 못했던가! 지금 생각해도 안타깝다.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성숙한 사람들은 알코올이나 마약과 같은 약물로 도피하거나 심지어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폭력으로 해소한다. 무조건 참다가 크게 터뜨리는 유형도 있다. 반면 건강한 사람들은 운동이나 예술 활동으로 그러한 에너지를 승화시킨다. 특히 웃음은 눈물과 함께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조절하도록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연치유기제이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대부분 후천적으로 배워야하지만 웃음과 눈물은 선천적인 능력이다. 세상에서 가장 잘 웃고 잘 우는 이들은 어린아이들이다. 이러한 능력은 어른이 되면서 오히려 사회적 눈치가 발달하면서 점차 위축되고 퇴화되는 경향이 있다. 장담하건데 어른이 된 당신이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짓고 작은 농담에도 큰 소리로 웃고 있다면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웃음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극적인 상황에서 탐구한 중요한 사례가 있다.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이며 미국 인터내셔널 대학에서 로고테라피를 가르쳤던 빅터 프랭클(1905-1997)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의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수용소 문을 들어서는 순간 모든 인권은 박탈된다. 이름도 직업도 소유물도 압수되고 매일 체중을 달아서 기준에 미달되면 가스실로 직행하는 것이다. 심리학자였던 그는 이런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고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지 관찰하였다. 그의 경험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청아출판사>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중 한 장에서 “강제 수용소에서의 유머”를 다루고 있다. 그는 아무리 억압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은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임을 발견한다. 우선 살아남기로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절망에 빠져 삶을 포기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었고(그와 그의 동료들 몇은 살아남았다!) 같은 처지의 동료들을 경쟁자로 간주할 것인지 협력자로 간주할 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자신들을 말살하는 나치를 용서하고 죽을 것인지 저주하며 죽을 것인지도.... 그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이 극한 상황에서 웃음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 바탕 웃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을 체험하고 빅터 프랭클은 유머를 개발하여 자신도 웃고 동료들에게도 유머를 가르쳤다고한다. 나치는 수용소 안에서 말하는 것을 금지 했다지만 히틀러를 대상으로 하는 재미있는 유머가 가장 활발하게 창작된 시기가 바로 이때라고 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와 동료들은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웃은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웃기로 선택한 셈이다.

독서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의 심리정서적인 문제를 돌보고 성장을 촉진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사람들을 치유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책을 읽으면서 소감을 나누는 모임에서 건강한 웃음과 눈물이 있다면 확실하게 치유되고 있다.’라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그 때문이라도 나는 소그룹으로 책을 읽을 때 유머가 풍부한 작품을 좋아한다. 예컨대 그림책 작가인 “윌리엄 스타이그”의 작품들이다. 그는 ‘예술은 재미있어야 한다.’라고 믿는다. 스타이그의 책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수 십 권 번역 출판되었으며 그 가운데서 백미는 <슈렉>을 꼽고 싶다. 이 작품은 앤드류 애덤슨과 비키 젠슨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으로 유명한데 원래는 그림책이 원작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듯싶다. 슈렉에서 등장인물들은 전통적인 서사의 문법들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슈렉의 부모들은 아들을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대신 제 몫의 나쁜 짓을 세상에 나가서 하라고 내 쫒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의 인정과 칭찬을 갈구하지만 슈렉은 자신을 향한 혐오감을 즐거워한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그림책에만 나오는데....) 슈렉이 공주가 갇혀 있는 성에 있는 사면이 거울 방인 곳에 들어섰을 때이다. 슈렉은 온 사면의 거울에 비춘 자신의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오싹한 느낌을 받는데.... 이내 그것이 자신인 것을 알아차리고 흐뭇해한다. 그리고 공주는 마법이 풀려도 여전히 못 생긴 그대로이다.

여름 무더위에 가족들과 함께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책을 한 권 읽고 실컷 웃어보기를 권해드린다.
2020-10-30 16: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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