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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 글모음 게시판입니다.

  [서평] 김정운 교수의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읽고
  이영식
  



김정운 교수의 영감을 주는 책을 읽고 일 곱편의 독후감을 썼다.

1. 나는 오늘 행복하게 살기로 선택한다.

>이 책에 대하여 일곱번 째 북로그를 쓴다. 그 만큼 나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 넣는 책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 책에 한 편의 북로그를 쓰라는 규칙도 없으니 끝으로 한 편 더 써보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했던 점은 우리 부모님의 세대, 그리고 나와 비슷한 연배의 세대들의 삶의 방식에서 가장 결핍되어 있는 점을 놀라운 통찰과 재미있는 예화를 곁들여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 결핍이란 무엇인가? "행복한 느낌", 바로 그것이다. 나 역시 행복한 감정이란 잘 가꾸고 관리 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넉넉하고 전세집을 전전하지 않도록 자기 집을 가지며 멋진 자동차를 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즉 생존과 소유의 패러다임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어찌보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것 만큼이나 모순된 삶의 태도라는 것이 저자의 책을 통해서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나에게 많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행복감과 소유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만 비례할 뿐 어떤 지점을 넘어서면 별로 상관이 없어지는 것 같다. 집 한 칸 없고 내일 먹을 것도 없으며 처자식이 굶고 있는 데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허생전에 나오는 허생원이나 가능할 것이다. 행복을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물질과 안정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일제의 탄압과 육이오 전쟁 등 모진 세월을 보내면서 가장 생존 이외의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가치관, 삶의 방식, 몸의 습관이 고착되면서 행복감이란 소유를 많이 하는 데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뿌리 깊이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또 하나의 잘못된 인식은 행복감이란 가꾸지 않아도 열심히 돈을 벌고 많이 가지면 저절로 가지게 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정작 인간을 행복하게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감이란 감정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큰 집을 사고 많은 돈을 벌고 좋은 차를 가질 때 느껴지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작은 것에도 감사와 기쁨이 있다면 얼마든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행복의 뿌리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 많이 소유하면 저절로 행복해 질 것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더 많은 소유를 위해 가족간의 소중한 관계를 희생했던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다. 관계가 소유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소유가 관계를 섬기도록 할 때 참된 행복이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정채봉 선생의 어른을 위한 동화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신으로부터 딱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몹시 고민이 되었다. 자신의 삶을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내야 했다. 그는 노총각에 인물도 별로여서 여자들에게 늘 외면당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마침내 첫번째 소원을 빌었다. "신이시여 저로하여금 뭇 여성들의 사랑을 받게 하소서." 그 다음남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미모의 여성들이 자기에게 접근해 왔다. 서로 관심을 끌겠다고 다투기까지 했다. 거기다가 밤중이고 새벽이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와서 구애를 하는 바람에 편히 쉴 수도 없었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은 것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젊은이는 한 숨을 내쉬면서 푸념처럼 말했다. "주여 제발 저 여자들에게서 나를 구해 주소서." 그런데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소원이 되고 말았다. 이제 한 가지 소원밖에 남지 않았다. 마지막 한 가지 남은 것으로 무엇을 구해야 할 지 밤새 고민하던 젊은이는 드디어 이렇게 빌고 말았다고 한다.

"신이시여 내가 무엇을 구해야 행복해 질 수 있는 지 알려 주십시오."

신으로부터 응답이 왔다.

"내가 너라면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법을 알려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오늘 맑은 공기로 숨을 쉴 수 있는것, 입맛이 있어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것,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것, 다닐 직장이 있는 것, 가족이 있는 것 등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미 이런 마음은 네 안에 있느니라."

이 책이 나에게 가장 공감을 주는 내용은 바로 자신의 행복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행복의 필 수 요소가 놀이의 다섯가지 요소에 다 들어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내적 동기를 가져야 하며 비일상적, 그리고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들 말이다. 무엇보다 행복이 즐거움을 수반한 감정의 세계인 것을 저자는 설득력 있게 알려준다. 행복은 행복을 관리하는 법칙에 따라 관리되어야 한다. 과거 생존의 패러다임과 소유욕으로 충만한 삶의 습관을 가지고 어림도 없는 영역이다. 둘은 연관성이 있으나 서로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한 삶을 선택하기고 다시 다짐해 본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여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많은 통찰을 얻게 되어 기쁘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행복"이라고 한다. 이제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고 나 또한 동감한다. 행복해 지기 위해서 일하는 시대가 활짝 열려있다. 우리 아이들은 이 점에 있어서 확실히 앞서 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이 책을 한 권 선물하였다. 아이들에게 노는 것은 마치 죄를 짓는 것 처럼 죄의식을 심어 주지 말자고 부탁했다. 단지 일과 쉼의 균형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절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자고 했다.

모처럼 좋은 책을 읽고 기쁘다. 나는 오늘 행복한 살을 살기로 선택한다.

2. 21세기의 창의성 개념에 대하여 [leo1959] ㅣ 2006-05-21 ㅣ

이 책은 여러모로 나에게 공감을 주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저자는 창의성의 본질을 정보와 관련 속에서 조명하면서 놀이를 통해서 그것을 가장 잘 길러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 창의성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입력된 정보를 서로 연결시켜 새로운 지식과 기술, 기계, 아이디어를 창출 하는 것을 말한다. 에디슨의 발명은 디트로이트 도서관에서 비롯된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어린 시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도서관에서 보냈다. 그 곳에 있는 책을 모조리 읽었는데 아래 선반에서 위의 선반까지, 심지어는 백과사전까지 다 읽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한 사람의 머리 속에 도서관 하나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저자는 유학시절 박사학위 논문 목록을 정리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구입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데이타 베이스를 운용하는 프로그램까지 구입하는데 거금 600여만원을 들였을 때 주위에서는 주제넘은 짓이라고 고깝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여 박사학위 논문을 잘 집필했을 뿐만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연구소 자료를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기관의 모든 정보를 장악해 버린다. 자기 나름대로 연구소의 자료를 정보화하여 데이타베이스를 구축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위를 마친 유학생은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이민법에도 불구하고 모교에서 전임 교수자리를 얻어 4년간이나 일을 강단에서 가르쳤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정보를 다루는 능력을 인정 받은 덕분이었다.

이런 저자의 경험들이 나에게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내가 컴퓨터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7년 경이 아닐까 싶다. 만학도인 나는 군대문제를 해결하고 학부에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동기생 보다 교양과목을 널리 수강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컴퓨터 과목을 수강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다. 당시는 PC가 극히 초보적인 상태였다. 대학을 신학대학원 논문을 쓰던 시절 1991년 2학기에 나는 아내의 동의를 얻어서 286컴퓨터를 한 대 들여 놓았다. 당시 기억으로 거의 300만원을 호가했던 기억이 난다. 할부라고는 하지만 가난한 신학생의 재정상태로는 정말 큰 마음 먹고 산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나는 아내에게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컴퓨터로 논문을 잘 써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부수적인 소득에 불과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후로 우리 집은 수 없이 컴퓨터를 바꾸었다. 지금 나는 컴퓨터를 능숙하게 내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문서 작성은 물론이고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일, 인터넷에 글쓰기, 이메일로 의사소통하기, 그리고 핸드폰에 문자를 뿌리는 일까지 컴퓨터로 처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내가 쓴 글을 모두 정리해 두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지 통신이 가능한 곳에서는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노트북을 곧잘 썼지만 지금은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물론 노트북이 있다면 빔 프로젝터를 연결하여 프리젠테이션 하는 데 도움은 될 것이다.

사실 내가 책을 자주 보는 것도 21세기의 창의성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책 속에 양질의 정보가 들어 있고 개인적인 독서를 통해 습득한 지식을 다른 지식과 연결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나는 이런 방법을 학부시절 스승들로부터 배웠다. 미래 사회는 한 가지 학문만 깊이 해서는 경쟁력이 없고 몇 가지 학문을 결합하여 연구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던 것이다. 이를 학제간 연구라고 불렀다. 나는 지금 독서와 상담, 독서치료, 서사학, 교육학, 신학 등을 연결하여 연구하고 그러한 지식을 사람을 세우는데 활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창의성과 놀이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창의성이 정보와 정보가 연결되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과정이라면 정보들이 너무 논리적이고 단단하게 엮여 있어서는 곤란하다. 뭔가가 섞이고 연결되려면 먼저 느슨하게 풀어헤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놀이는 일상적인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모든 사물을 낯설게 만드는데 천재적인 소질이 있다. 한 가지 사물을 하나의 기능밖에 생각해 내지 못하는 두뇌에서 창의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놀이는 이처럼 내 안의 논리를 느슨하게 열어 두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적 개념의 쉼이란 육체적 노동자가 쉬듯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하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해보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지식노동자는 컴퓨터 앞을 떠나서 등산을 한다든지 조깅을 하는 것이 쉬는 것이다. 학생이 쉬는 것은 공부 말고 다른 것을 해 보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늘 하던 일을 떠나서 다른 일에 몰 두 할 때 두뇌가 쉼을 얻고 다른 정보가 결합될 수 있도록 느슨한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것일 게다.

내가 주로 쉬는 방법은 가까운 산에 오르거나 바닷가에 산책을 가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아내와 더불어 간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이 탁 트이고 마음이 쉼을 얻는다. 산에 가서는 숲 내음을 맡고 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약수터에 가서 물도 한 모금 마신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내가 가장 적극적으로 쉬는 방법은 여행을 가는 것이다. 물론 돈이 좀 드는 휴가방법이지만 말이다. 언제든지 훌 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부럽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영식 《http://www.bibliotherapy.pe.kr》


3. 감정에도 논리가 있다. [leo1959] ㅣ 2006-05-21 ㅣ

이성적 사유, 합리적 사유에 대해 끊임없이 신뢰를 보내던 근대성은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가들에 의해서 철저한 도전을 받는다. 즉 합리성에 기초한 근대성은 이성이 감성을, 남성이 여성을, 백인이 흑인을 어떠한 방식으로 억합해 왔고, 합리성이라라는 새로운 이름의 야만이 어떤 모습으로 그 배후에 숨어 있는가를 구체젓 사례를 열거하면서 해체시긴다. 또한 이러한 합리주의는 이성이 감성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편견을 심어주었다. 물론 생존을 위해서는 이성이 감성보다 우위에 있을 지 모른다. 오늘 기분이 나쁘다고 직장을 때려 치우면 당장 가족들이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 삶에서 내가 행복과 불행은 모두 감정의 문제이다. 그런면에서 합리적인 것을 너무 맹신하는 사조도 합리적인 것은 더 이상 필요없다고 폐기처분하는 사조도 극단으로 치우쳐 있다. 이 양자에 조화와 균형감각을 길러줄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데 저자는 하버마스의 도구적 이성과 의사소통적 이성 개념을 소개한다.

여기서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가들의 비판을 받는 것은 도구적 이성이다. 도구적 이성이란 목적의 정당성과는 상관 없이 주어진 목적에 얼마나 효울적으로 도달하는가에만 관심을 가지고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구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을 도구로 삼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 생산성 극대화를 목표로 개발된 분업화와 분업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발명된 컨베이벨트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체제에서는 도구가 인간의 주인이고 인간은 도구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합리성은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합리성의 다른 차원이 있다. 의사소통적 합리성, 혹은 의사소통적 이성이다. 이는 타인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는능력을 말한다. 타인이 목적이 된다는 이야기는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주관적 이해의 한계를 극복하는 간주관성을 획득한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어린 시절 어머니와 관계에서 어떻게 발달하는지 주목한다. 두가지 개념으로 설명하는 데 "전 시시적 의사소통"(proto-imperative communication)과 "전 서술적 의사소통"(proto-declarative communication)이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 아가들이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키면서 엄마를 부려 먹는 의사소통이다. 후자는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키면서 엄마에게 질문하거나 허락을 구하거나 반응을 살피기 위한 의사소통이다. 이때 전자의 의사소통은 엄마가 나의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이 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물건이 수단이고 엄마가 목적이다. 이때 아이들은 엄마의 반응을 참조하여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참조(social referencing)라고 한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 사건에 대한 엄마의 말과 행동, 정서적 반응은 아이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가 잘 놀 줄 모르면 아이들도 잘 놀줄 모르고 부모가 잘 놀면 아이들도 따라서 잘 놀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결론을 유추할 수 있다.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발전과 발달은 정서적 상호 교류를 통한 상호인정의 틀안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한다.

지금까지 합리성의 두 가지 차원을 살펴 보았다. 인간의 행복과 직결된 것은 도구적 이성보다 의사소통적 이성능력이 결정적임을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저자도 주장하지만 감정의 소통이다. 논리적 사고에 규칙이 있듯이 감정에도 문법이 있다. 감정이 사람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지극기 사적인 영역이라면 애초부터 소통이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는 아주 어려서부터 엄마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소통하는지, 타인의 감정을 어떻게 읽고 피드백하는 지 배워왔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런 능력이 너무 부족한 사람들이 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된다. 예컨대 김정현이 쓴 《아버지》라는 소설의 주인공이 대표적 사례이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대한 큰 사랑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데는 너무 미숙하다. 결과적으로 그는 큰 사랑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자녀들에게 완전히 따돌림을 당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수십년씩 훈련하면서 관계의 문제, 감정의 문제를 잘 다루는 것은 저절로 될 것이라는 가정하는 거을 본다. 참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면에서 우리 사회가 경제적 성장으로 인하여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지만 관계의 문제, 감정의 문제를 다루는 능력은 미숙하여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본다. 높은 이혼률과 특히 황혼기 이혼률이 급증하는 것이 이 사실을 대변해 준다. 과거 유교적 가치관이 튼튼했던 시절에는 아내들이 참고 살았지만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는 남자를 견딜 이유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잘 노는 사람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어주고 피드백하는 능력을 놀이를 통해서 극대화 시키는 사람을 말한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영식 《http://www.bibliotherapy.pe.kr》

4. 오르르 깍꿍! [leo1959] ㅣ 2006-05-21 ㅣ

인간을 정의하는 말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놀이하는 인간"(Homo Rudens)이다. 그만큼 놀이란 한가한 시간에 즐기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되는 데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저자는 어머니와 아가의 놀이를 발달적으로 고찰하면서 의사소통 능력과 연결시키고 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눈맞추기 eye contact> 엄마는 끊임 없이 아가의 눈을 쳐다보면서 말을 걸고 얼르고 반응을 유도한다. 아기가 조금만 엄마의 말에 반응을 해도 크게 기뻐하면서 야단이 난다.

<정서조율 affect attunement> 지구상의 모든 엄마들의 말투는 비슷하다고 한다. 이를 "아기 말투"(baby talk), 혹은 "엄마말투"(matherese)라고 정의한다. 엄마말투의 특징은 말꼬리를 올리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아내가 아이들을 기르던 생각이 난다. "오 그래쪄?"하고 말꼬리를 올리던 기억말이다. 이런 말투를 통해서 엄마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가와 정서적 일치 내지는 공유이다.

<공동주의 집중 joint-attention>엄마와 아기가 공동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단계이다. 우리 아이들은 아내와 함께 길거리를 걸으면서 글자를 많이 깨우쳤다. 한글도 배우고 영어도 배웠다. 길거리를 휩쓸고 다니면서 아이가 간판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건 뭐야?"라고 물으면 "저건 OOO이야."라고 대답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번에는 아내가 묻는다. "저건 뭐라고 읽어?" 그러면 아이가 대답한다. "저건 OOO이야."라고 더듬거리며 읽으면 아내는 너무 기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과정은 그림책을 볼 때도 잘 드러난다. 그림책은 아이와 엄마의 공동관심사이며 독서는 공동작업이다. 책은 매개체에 불과하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아가와 엄마의 정서적 교류와 유대이다.

이상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놀이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라는 점이다. 어린이의 경우 혼자 하는 놀이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아이는 상상력으로 대상을 만들어내서 함께 놀고 있는 것이다. 놀이에서 상호 주관성은 곧 사회적 능력의 기초이다. 놀이에서 충분히 이 능력이 습득되지 않는다면 현실세계에서 큰 고통을 당할 것이 명확한 이치다. 한편 치료는 다시 놀이로 돌아가서 상호주관성을 길러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다.

나 역시 정서적 공감 능력이 매우 부족했던 사람이다. 특히 아내에 대해서 그랬었다. 남편이란 돈 잘 벌어다 주는 것으로 역할이 끝나는 게 결코 아니다. 아내의 마음을 읽어주고 그것을 말로 표현해 주는 것은 가장 기본된 능력이다. 그 기본이 부족할 때 부부사이는 소원해지고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상담을 공부하면서 이부분에 역점을 두고 많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요즈음은 아내로부터 "당신이 내 마음을 잘 읽어 주네요."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하지만 "당신하게 이야기 하는 것은 절벽에대 대고 말하는 것 같아요."라는 피드백을 듣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있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100% 읽어주고 공감할 수 있겠는가마는 서로 노력하는 자세는 중요하다고 본다. 정서적 공감 능력에 있어서는 남자들이 엄마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아무리 근엄한 남자도 면전에서 "오르르 깎궁!" 하면 웃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는 먼 옛날 엄마가 자신과 눈을 맞추고, 말꼬리를 올려가며 정서를 공유하던 시절의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 있는 놀이 하나를 생각해 냈다. 일단 세 사람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두 사람을 앞에 두고 말하는 상황을 설정한다. 예컨대 갑이 을이라는 남자 친구에게 자기 여자친구인 병을 소개하는 상황을 설정할 수 있다. 이때 을이 소개 받은 여자친구 병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히 말을 한다. 그런데 병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아무런 반응이 없다. 대신 갑이 옆에서 맞장구를 치면서 "으흠", "그래서?", "어머나!"와 같은 정서조율 반응과 더불어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앞으로 숙이며 들어보자. 그러면 말하는 을이 어느 쪽을 보면서 말을 하게되는지, 왜그런지 서로 평가해 보자. 역할을 바꾸어 경험해 보자. 또 병에게 을이 갑자기 "오르르 깍꿍!"이라고 해보자. 그래도 웃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자 이제 너무 근엄한채 폼 잡지 말고 "오르르 깎궁!"이라도 해서 다른 사람을 웃겨보자. 그이들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해 질 것이다. 여러분 모두에게 "오르르 깍꿍!"이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영식


5. 놀이를 통해서 길러지는 관점획득(perspective taking)능력 [leo1959] ㅣ 2006-05-21 ㅣ

놀이를 통해서 관점획득(perspective taking)능력이 길러진다는 저자의 설명은 의사소통 능력 증진과 심리 정서적 문제에 대한 통찰, 그리고 대인관계 능력을 증진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우선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은 타인의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관점획득부른다. 간단한 심리학 실험이 있다. 필통에서 연필을 빼고 사탕을 넣었다. 그리고 한 아이를 불러 묻는다. “이 안에 뭐가 들었을까?”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연필요.” 심리학자는 필통 뚜껑을 열어 사탕이 들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필통 뚜껑을 다시 닫으며 물었다. “그런데 저 밖에 있는 친구에게 ‘이 안에 뭐가 들었니?’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물론 사탕이라고 대답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연필이라고 대답했다. 아주 어린 나이에 관점획득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삐아제는 아이들의 공간 관점 획득 능력을 연구했다. 지도를 거꾸로 들고 옳은 방향을 상상한다든지 사물의 보이지 않는 뒷면을 유추하는 것은 공간관점획득 능력때문이다. 같은 원리고 인간은 사회적 관점획득 능력이 있다. 즉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할 뿐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에서 사건과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공간적인 관점획득 능력은 여성보다 남성이 우월하다. 하지만 사회적 관점획득 능력은 오히려 여성이 남성보다 앞선다. 이 양자가 별 관계가 없음을 말해준다. 생존을 위해서는 공간지각능력이 더 중요할 지 모르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데는 사회적 관점 획득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사회적 관점획득 능력은 어떻게 길러지는 것일까? 바로 놀이를 통해서 길러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내 경험으로도 그렇다. 나는 예전에 장기를 즐겨 두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대성 할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장기를 잘 두는 것은 자기 수만 생각해서는 결코 고수가 되지 못한다. 내가 이렇게 말을 놓으면 상대방은 어떻게 대응할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수를 내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고수들은 십여수 앞을 내다본다고 한다. 혼자서 하는 등산이나 맨손체조를 빼 놓고는 상대가 있는 모든 놀이는 관점획득 능력을 기본으로 한다.

어린 아이와 놀아주는 아빠가 있다고 하자. 아이들은 일상적인 사물을 낯설게 만드는데 천재적 소질이 있다. 빗자루를 마녀가 타는 비행기로 만들고 연필을 총으로 만들기도 한다. 나름대로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모든 사물을 놀이감으로 재 창조한다. 이 때 관점획득 능력이 있는 아빠는 아이의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규칙을 읽어내며 놀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어떻게 빗자루가 비행기가 되는지, 혹은 연필로 그딴 장난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면 의사소통을 끝장나고 만다.

사실 나이가 들 수록, 사람이 성숙해 질 수록 관점획득 능력이 커져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된다면 어찌 그런 어른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완고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다른 사람의 입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고집불통이 되는 것는 슬픈 일이다. 나는 오늘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갈등을 체험하면서 대체적으로 나이든 사람들은 완고해서 점수를 잃고 젊은 사람들은 바른 것을 예의 없이 표현해서 점수를 잃는 것을 본다. 둘 다 확실히 미성숙하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기 전에 상대방이 입장에 서서 사태를 분석하고 평가하여 대안을 세울 수 있는 성숙함이 아쉽다.

관점획득 능력은 놀이를 통해서 발달하지만 서사학의 시점바꾸기 기법을 통해서도 길러질 수 있다. 시점 바꾸기란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서술하는 서사적 기법이다. 즉 오늘 나의 일기를 서술하는데 상투적인 일인칭 화자를 탈피해서 김씨, 혹은 이씨를 내세워 3인칭으로 서술해 보면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더 나아가 배우자나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화자로 내세워 서술할 수 있다. 어떤 화자를 내세워서 서술하는가에 따라 같은 사건이나 상황이라도 내용이 매우 달라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심리극은 물론이고 다른 개인 상담에도 시점을 바꾸어 보는 기법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영식

6. 놀이하듯 일 할 수는 없을까? [leo1959] ㅣ 2006-05-21 ㅣ


저자에 따르면 놀이는 다음과 같이 다섯가지 특징이 있다.

1. 비 실재성: 놀이는 일상적인 경험과 구별된다. 놀이에서 사물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아이들은 빗자루를 가지고 말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든다. 아이들의 소꼽놀이에서 잘 관찰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아이들은 일상적인 것을 낯설게 만드는데 천재이고 어른들은 낯 선 것을 일상적으로 만드는데 도사이다.

2. 내적 동기: 놀이는 외부의 보상 없이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재미 있는 일도 다른 사람이 시켜서,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한다면 놀이가 되지 못한다.

3. 과정지향성: 목표보다는 과정을 즐긴다. 현실 세계에서는 지고 이기는 것이 큰 문제이지만 놀이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과정이 즐거웠으면 그만이다.

4. 선택성(자율성): 무엇이든지 자신이 선택하면 놀이가 될 수 있다. 심지어 따분한 일도 자신이 즐겁게 해 내기로 선택하면 놀이처럼 재미있게 해낼 수 있다. 여기에 일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원리가 있다.

5. 즐거움: 즐거움이 없다면 놀이가 아니다. 놀이에도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이 있지만 오히려 설탕에 소금을 조금 넣어야 더 단 맛이 나는 것과 같이 그것은 즐거움을 더 해준다.

《71-73쪽》

이와 같은 내용을 읽으면서 HARRY PAUL 이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이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연결이 된다. 세계적인 파이크 프레이스 어시장 사람들은 비린내 나는 생선 장수라는 따분하고 고되고 재미 없는 일을 놀이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놀이의 첫 번 째 특성인 비 실재성의 획득이다. 고객들에게 살아 있는 생선을 던져보게 하고 크고 작은 이벤트를 통해서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재미 있는 곳이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또한 그곳 사람들은 매일매일을 재미 있게 일하기고 선택한다. 이는 놀이의 내적 동기와 선택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업은 내 맘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할 것인지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따분한 일도 즐겁게 하기로 선택하면 마음도 밝아진다. 물론 이렇게 일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얼마 벌겠다는 것 보다 일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놀이가 과정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듯이 즐겁게 일하기로 선택한 일을 과정을 즐기면서, 놀이처럼 하는 사람에게는 진짜로 즐거운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는 여기서 조심스럽게 이런 결론을 내려볼 수 있다. 놀이를 일처럼 하는 사람도 있고 일을 놀이처럼 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이다. 놀이에서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이기고 지는 승부에만 집착하여 신경질을 부린다면 이미 놀이가 아니다. 반대로 따분해 보이는 일이라도 내가 즐겁게 일하기로 선택한다면, 그 일을 창의적으로 할 수 있다면 놀이같은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일의 종류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내적인 동기, 선택, 과정의 문제인 것을 알 수 있다. 놀이처럼 일 할 수 없을까? 물론 있다.

아무리 적성에 맞는 직업이라도 매번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로 선택하자 훨씬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 중에 하나가 병원에 방문하여 환자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나는 병원이 두렵다.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위암으로 투병하는 동안 병원에 자주 가셨는데 그 때 병원에 대한 두려움의 심상이 새겨진 것 같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병문안을 갈 때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려워 하고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니다. 기왕 방문 하는 거 기꺼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한다. 요즈음은 마음이 한결 가볍고 두려움도 많이 감소했다.

7. 열심히 일한 그대 놀 자격이 있다 [leo1959] ㅣ 2006-05-18 ㅣ


"자유, 민주, 평등은 수단적 가치이지만, 행복과 재미는 궁극적 가치다. 그런데 우리 모드가 행복해지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이 장애물ㄷ르은 일단 자유, 민주, 평등을 획득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재미와 행복이라는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는 법을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 정작 행복하게, 즐곡고 재미있게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있는지를 몰라 허둥대는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은 없기 때문이다."(16쪽)

이 부분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나 역시 빈둥빈둥 놀고 나면 괜스레 죄책감을 늘낄 때가 많았다. 일의 반대말은 노는 것이 아니라 나태함이라는 말도 공감이 간다. 노는 것도 정열적으로 놀아야지 노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니라면 이 역시 문제다. 이 책에서의 "논다"라는 개념은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좀더 저자의 말로 표현해 보자면 쉼, 또는 휴식이라 해야 옳을 것 같다. 물론 쉼이나 휴식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콕(방에 콕 쳐박혀 있기)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가 강해서 저자의 본 뜻을 흐릴 수 있다. 따라서 아무것도 안하고 쉰다는 의미가 아니라 창조적 놀이로서의 쉼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런 의미는 저자가 서문에서 쉬는 시간에 연장의 날을 세우는 사람의 비유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쉼이라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짝말이다. 즉 부부나 형제처럼 일쉼(일과 쉼)이라고 표현하는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휴식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일년 내내 노는 사람은 노는 것 자체가 일이니까말이다. 한편 휴식 없는 일은 시지프스가 받은 저주에 걸린 사람이다.

신들의 미움을 받아서 시지프스는 하데스라는 높은 바위산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 한다.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린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바위는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굴러떨어져 버린다. 이런 과정이 쉼 없이 계속되는 것이 시지프스가 받은 저주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쉬는 것과 노는 것은 엄밀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쉼은 일과 짝말로 열심히 일한 그대에게 주어지는 당당한 자격이다. 반면 부정적 의미에서 노는 것은 일이라는 짝말이 없다. 그냥 노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 것을 피해서 빈둥거리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놈팽이라고 부른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고도의 전문성과 지식이 필요하듯 쉬는 데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대충 그의 취지는 이해 했으니 이제부터 꼼꼼히 읽고 잘 쉬는 방법을 개발해 보려고 한다. 연장의 날을 잘 들도록 갈기위해서....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영식 《http://www.bibliotherapy.pe.kr》

[김정운 교수 강의 동영상(아주대학교)]

[김정운 교수 강의 동영상(KBS)]

2006-05-23 16: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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