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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의 독서지도 연구게시판입니다.

  [서사분석]치즈와 버터, 그리고 해바라기 씨
  이영식 [ E-mail ]
  

I.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21세기 새 천년이 열리면서 세계적 베스트 셀러에 올랐던 책 가운데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진명출판사, 2000)가 있다. 이 책은 본래 경영인들로 하여금 새 천년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도전하기 위해 쓰여진 짤막한 우화이지만 각계 각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처럼 큰 인기를 누린 까닭은 무엇일까? {변화}라는 세기적 화두를 우화의 형태를 빌어 박진감 넘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저자는 이야기에 핍진(逼眞)성을 더하기 위하여 시카고에서 모이는 작은 모임을 설정한다. 이 모임에서 "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서로 토론하고 "내 버터는 어디로 가 버렸지?"라는 책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스니프와 스커리라는 생쥐 두 마리와 헴과 허 라는 가상의 작은 인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이들은 치즈를 주식으로 먹고사는데 치즈 창고를 찾아내는 것이 일과이다. 치즈가 떨어지면 또 다른 창고를 찾아 나서야한다. 어느 날 두 마리의 쥐와 두 꼬마 인간은 거대한 치즈창고를 찾아낸다. 이 부분에서 쥐들과 인간의 태도가 달라진다. 쥐들은 치즈가 어느 날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부단히 창고의 상태를 감시하는 한편 다른 치즈 창고를 찾는 일에 게으르지 않다. 하지만 두 인간은 그 창고에 평생 살기로 작정하고 눌러 앉는다. 세월이 지나 어느 날 두 사람이 치즈 창고에 가보니 모든 치즈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쥐들은 이미 창고를 떠나고 없었다. 그들이 받은 충격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기서 두 사람은 선의 기로에 서 있다. '이미 치즈가 없어져 버린 현실을 수용하고 또 다른 치즈 창고를 찾아 나설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머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안일하게 사는 동안 무능력해진 그들이 또 다른 치즈 창고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즉 변화의 진정한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내부에 있는 두려움이었다.

결국 그 중 한사람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환경을 원망하면서 창고에 남아 있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새로운 치즈창고를 찾아 나선다. 결국 그의 도전은 성공했고 자신의 경험을 짤막한 경구형태로 남기면서 그의 친구가 참고하도록 한다. 그가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다.


  • 변화는 항상 일어나고 있다. 변화는 치즈를 계속 옮겨놓는다.
    변화를 예상하라.

  • 치즈가 오래된 것인지 자주 냄새를 맡아 보라.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라.

  • 사라져버린 치즈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릴수록,

  • 새 치즈를 보다 빨리 발견할 수 있다.

  • 자신도 변해야 한다.

  • 치즈와 함께 움직여라.

  • 변화를 즐기라.

  • 모험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와 새 치즈의 맛을 즐겨라.

  • 신속히 변화를 준비하고 그 변화를 즐기라.

  • 변화는 치즈를 계속 옮겨놓는다

II. 내 버터는 어디로 가 벼렸지?


치즈논쟁으로 세계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을 무렵 딘 리플우드는 {내 버터는 어디로 가버렸지?}(이레출판사, 2001)라는 책을 써낸다. 이 책은 앞의 치즈 책의 서사적 양식을 패러디하여(주인공으로 고양이를 등장시킨다) 치즈에서 다루는 "변화에 적응하라"는 주제에 정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치즈에서 주장했던 핵심 내용들을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논박한다.


  • 확실한 것은 없다 - 버터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 편안히 즐겨라 - 버터가 없어질 것을 걱정하여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면 기쁨을 맛볼 수 없다

  • 변해 가는 세상사가 얼마나 멋진 것인지를 알아라 - 버터는 언젠가 없어지기 때문에 맛있다

  • 발길을 멈추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라 - 버터를 찾아 달리고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것이 있다

  • 자기답게 살아라 - 버터가 없어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 청빈의 뜻을 품어라 - 욕망에는 끝이 없다. 버터는 아무리 있어도 부족하다

  • 넘쳐흐르는 행복을 느껴라 - 버터가 없어도, 맑은 날 아침, 어쩐지 느껴지는 행복을 기뻐하라

책의 서문에서 저자 스스로가 불교의 스님인 것으로 밝히고 있듯이 버터의 관점은 불교적 세계관으로 "변화"라는 주제를 해석한 것이다. 한마디로 변화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변화에 집착하여 심신이 고달프게 살기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에 기초한 삶을 살라고 젊잖게 충고한다.

III. 해바라기씨는 누가 먹었나?


"변화"에 대한 치즈와 버터의 관점은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과 극단 사이에는 온건파도 있기 마련인지라 변화를 주제로 다른 또 다른 책이 출판되었는데 닉 레버의 {해바라기 씨는 누가 먹었나?}(학원사, 2001)이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미국인 저자가 쓴 책으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틀렸다는 의도에서 썼음을 서문에서 밝히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에 따르면 치즈는 약육강식의 경쟁 사회를 부채질하는 생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진단하고 과연 그런 것인가 의문을 제기한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햄스터와 토끼들에게 어느 날 문제가 생긴다. 새끼를 많이 낳게 되면서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식량인 해바라기씨가 부족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토끼와 일부 햄스터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나서고 나이가 들었거나 새끼가 딸린 햄스터들은 어쩔 수 없이 그 땅에 남게 된다. 변화와 발전, 불평등을 당연한 가치로 여기는 토끼들의 마을과 소박하지만 평등하게 살아가는 햄스터들의 마을은 각각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세월이 지나 두 종족은 매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사회를 발전시켰는데 햄스터들은 비인간적인 도시문명을, 토끼들은 평화롭고 인간미 넘치는 문명을 발전시킨다. 저자는 두 문명 중 어떤 곳이 참으로 살만한 마을인지를 선명하게 대조시키며 독자들을 선택앞에 세운다.

변화에 대하여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인용해 본다.

"치즈가 없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변화라며 소동을 부리기 전에 왜 치즈가 없어졌는지, 그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아는 게 우선 필요하다. 매상이니 이익이니 무용지물이니 하며 엉덩이를 맞아가면서 치즈를 찾아 돌아다니는 그런 인생이 즐거울 리 없다. 게다가 모처럼 찾아낸 치즈 대부분은 엉덩이를 후려치고 있는 작자가 갖고 가 버린다. 풀장 딸린 별장이니 고급 외제차로 변하는 셈이다. 찾아낸 본인에게는 초라한 부스러기가 주어질 뿐이지만, 열심히 커다란 치즈를 찾아낸 작자에게는 그나마 약간 큰 부스러기가 주어져 차별화된다."

"변화"에 대한 해바라기의 입장은 버터처럼 변화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변화를 수용하면서 그 변화가 참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방향인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변화라면 차라리 변화하지 않는 것 만 못하다는 것이다.

이들 세권의 책은 모두 "변화"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서로 강조점이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공간구조를 분석해 보면서 살펴본다.

IV. 치즈, 버터, 해바라기씨의 공간구조 분석

세 작품이 모두 같은 서사적 형식을 빌어 같은 주제를 취급하고 있어서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통합독서] 훈련에 적절하다. 세 작품이 같은 문학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이 공간에 대한 의미의 부여 부분이다.

1. 치즈의 공간: 치즈에서의 핵심 공간은 치즈창고이다. 치즈창고는 생존의 터전으로서 먹을 것과 휴식과 안전감의 근거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 공간은 영원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킬 있는 곳이 아니라 발견되는 곳이다. 저자는 치즈 창고 이미지를 21세기의 변화하는 문화적 흐름을 연결시키고 있다. 시대적 문명은 한 두 사람이나 혹은 몇 몇 기업, 심지어 한 국가마저도 그 변화를 막지 못한다. 단지 그 변화에 적을 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의 선택만이 있을 뿐 중간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치즈의 공간은 총체적 인류 문명이라는 포괄적이고 함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2. 버터의 공간: 버터의 핵심적인 공간은 고양이와 여우가 사는 숲 속이다. 숲은 동물들에게 삶의 터전이라는 점에서 치즈와 같지만 변하지 않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개념이 다르다. 단지 버터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 숲 속은 여전히 변함 없이 동물들의 삶의 터전이다. 때문에 자신이 살던 숲을 버리고 버터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은 헛된 것으로 인식된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왜냐하면 본래 버터는 자신이 살던 숲 속, 가장 가까운 데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터의 공간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 특별한 무엇"을 상징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어 치즈의 공간과 그 의미가 다르다.

3. 해바라기 씨의 공간: 해바라기씨의 핵심적인 공간은 도시와 전원적인 마을로 구별된다. 이들 공간은 치즈와 버터처럼 삶의 터전이요 생존공간인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전자는 햄스터들이 발전시킨 문명이고 후자는 토끼들이 발전시킨 문명이다. 전자는 방향 없이 무조건적인 효율과 성장만이 추구되는 비인간적이고 삭막한 곳이고 후자는 모두가 공존하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가치지 향적으로 발전시킨 문명이다. 이들 공간이 버터와 치즈의 공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것이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변화 자체는 불가피한데 문제는 변화의 방향이다.

[변화에 대한 각기 다른 세가지 관점] 언뜻 보면 위의 세 권의 책들이 변화에 대해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공간구조를 분석해 보면 변화의 서로 다른 요소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화에는 주체(중심)와 속도, 방향, 동인의 요소들이 있다. 치즈에서 변화는 의심할 바 없이 당연한 현실로 전제하고 있으며 단지 그 변화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하는 문제를 다룬다. 반면 버터에서는 변하는 것 속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의 행복은 변화를 좇아 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본질에 근거한다고 본다. 다시 말하여 변화의 주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편 해바라기 씨에서는 변화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수용하면서 그 방향이 무엇인가 묻는다. 사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화 자체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 역시 변화이다. 다른 사람들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변화에 우리는 가부간 반응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변하지 말아야 할 핵심가치마저 시대에 따라 흔들린다면 그것 역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영원히 변하지 말아야 할 핵심 가치는 지키면서 변화되어야 할 것은 변화시키는 태도가 바람직 한 것이다. 결국 변화에 대한 반응과 주체, 그리고 방향이 모두 적절한 지점을 선택하는 변화에 대한 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가 아니겠는가!

2002-01-24 22: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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