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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의 독서지도 연구게시판입니다.

  우한용 교수의 [문학교육이론]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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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의 출처는 우한용 교수의 홈페이지(http://plaza.snu.ac.kr/~wookong/indexx.html)임을 알려드립니다. 인용하실때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바랍니다. 독서지도의 이론적 근거로서 음미할 만한 글입니다.


문학/교육/이론:현비
文學敎育理論: 그 摸索의 道程

우한용(서울대 사대 교수)


Ⅰ. 문학/교육/이론

문학교육이론을 하나의 단어로 쓰지 않고 빗금을 그어 잘라 놓은 데는 까닭이 있다. 이 말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을 교육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을 교육하는 데는 문학의 이론과 교육의 이론이 어떻게 접맥되는가,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통괄하는 이론은 무엇인가 하는 등의 문제를 동시에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문학교육학의 성격을 구명하고 문학교육학 이론의 성립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문학교육과 문학교육학은 인접되어 있으면서 성격을 달리한다. 제도 비제도적인 과정을 통해 문학을 교육하는 전반적인 문제가 문학교육이라면, 문학교육학은 문학교육이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지향과 방법, 그리고 이의 이론화를 포괄하는 일종의 메타논리를 뜻한다. 문학교육이 실천적이고 경험적인 특징을 지닌다면 문학교육학은 문학교육을 대상으로 하는 이론 지향성이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문학교육과 문학교육학을 구분하여 사용하게 될 것이다.

문학교육학은 문학교육현상을 대상으로 한다. 문학교육은 문학이라는 현상을 전제한다. 문학이라는 것이 있어야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문학이라는 대상을 문학현상이라 한다면, 문학현상은 작가, 작품, 소통, 창조 등의 요소로 이루어진다. 문학을 작품으로 한정하지 않고 문학현상으로 용어정의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문학을 작품으로 한정할 경우 구비문학 영역이 배제되기 쉽다. 또한 문학을 일상언어와 전혀 다른 문학 고유의 언어체계 내지는 언어의 자율적 구조체로 파악함으로써 문학을 고립화하는 우려가 있다. 또한 문학이 독자들에게 소통되고 그 결과로 문학이 재창조되는 역동성을 고려하기 어렵게 된다. 문학이 만들어지고 소통되고 재창조되는 역동적 전과정을 문학의 범위로 포괄해야 문학의 전체상을 대상으로 문학의 이론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방법상 문학현상의 어느 한 부분을 중심으로 이론을 개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문학교육은 개인들이 문학현상 안에서 문학과 더불어 즐기고 깨달음을 얻으며 문학을 창조하는 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실천하는 제반 과정과 그 결과를 뜻한다. 문학교육의 결과는 다시 문학교육을 모색하는 데 수렴되는 자료가 된다. 그리고 문학교육이론을 수립하는 데 자료 역할을 한다. 그런데 모든 이론이 그러하듯이 이론은 또 다른 이론을 이끌어온다. 문학교육현상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이론 또한 문학교육현상 밖의 어떤 이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문학교육의 이론은 문학교육 자체가 그러한 속성을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이론과 실천의 두 측면을 공유한다. 실천이 없는 이론이 공허하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그러나 인간학과 연관된 이론의 경우 이론 그 자체가 형이상학적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실용화되지 않은 이론은 공허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단견이 되기 쉽다. 이론 없는 실천은 논리를 갖추기 어렵다는 논지 또한 같은 맥락의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문학교육이론은 여러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문학교육의 논리를 세우는 데에 적용된다. 또한 문학교육이론은 각종의 현장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계몽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그리하여 문학교육이론은 이론과 실천이 맞물려 돌아가는 역동성을 지니게 된다. 그런 점에서는 비평이론과 문학교육이론의 친연성은 두드러진다 할 수 있다.

문학교육의 이론은 문학현상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이론과 맞물려 있다. 다만 이런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문학교육현상을 학교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문학교육을 상정하는 문학교육현상으로 국한하는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 그리하여 문학교육현상이 문학을 만들고 소통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재창조하는 제반 국면에서 이루어지는 문학의 교육작용 전반을 대상으로 해야 제대로 된 논리를 세울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논의를 문학교육현상이 어떤 구도로 되어 있는가 하는 데서 출발하기로 한다.

Ⅱ. 문학교육현상의 이론적 얼개

1. 주체; 교사, 학생, 인간

문학교육현상은 문학의 교육작용이 드러나는 제국면의 역동적 실천태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문학현상이 인간현상이듯이 문학교육현상 또한 인간현상의 한 국면이다. 인간현상이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기존재를 규정하고 그 실현을 도모하는 모든 실천과 그 결과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대상이 외적으로 객관적 형태를 띠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가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거듭하거니와 문학현상의 주체는 인간이다. 마찬가지로 문학교육현상의 주체 또한 인간이란 점을 잊지 않고 논리를 전개해야 논리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문학교육학의 대상인 문학교육현상에서 주체가 되는 인간은 문학교육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데 따라 달리 규정되는 순환적 속성을 지닌 주체이다. 문학교육은 문학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상징적 교호작용이다. 문학교육현상의 주체를 교사로 한정할 수 없는 이유는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을 전제하는 데서 문학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논의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교실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문학교육을 문학교육의 한 모델로 상정하기로 한다.

교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문학교육은 교사가 '작품'을 가지고 학생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촉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 가운데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소설이란 그리고 비평이란 무엇인가 하는 등의 이론을 설명하고, 그것을 지식이나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그러할 경우 문학교육은 교사 편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학생을 일방적으로 이끌어가는 방향을 상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정당한 의미의 문학교육이라 할 수 없다. 편법과 변형의 양상일 따름이다. 학생이 읽고 판단하는 작품의 의미나 수용된 의미를 내면화하는 방식이 교사 일변도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들 사이에 잠재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점을 수용할 때라야 문학교육의 정당한 구조를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이상적인 형태의 문학교육에서 주체의 관계나 작용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될 것이다. 문학을 사이에 두고 교사와 학생이 벌이는 상호작용과 거기서 빚어지는 문학의 창조적 국면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는 모델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교육에서는 그 방식은 다소 다르지만, 교사나 학생이나 문학의 수용자이다. 다른 교육에서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소통양상이 이와 현저히 다르다. 교사가 주도권을 쥐고 어떤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대체로 학문적으로 인정된 공리 차원으로 정리된 것이다. 그러나 문학교육에서는, 그것이 어떤 작품을 가지고 설명하여 이해를 촉구하거나 감상한다고 할 경우, 그 작품에 대해서 교사나 학생이나 상호 주관적 관계로 연관된다. 물론 문학의 제도적 속성 때문에 교사가 주도권을 쥐는 것이기는 하지만 학생의 감상과 작품에 대한 선이해는 교사의 작품 이해에 영양을 행사한다. 그것을 교사가 수용하고 안 하고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또한 교사가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학생의 문학 수용을 통제하는 일종의 검열 제도에 대한 고려는 다른 맥락에서 해야 할 것이다.

교사와 학생을 상호적인 주체로 상정할 경우, 각기 다른 정체성을 지닌 두 주체 사이에 어떤 교감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주체, 인식, 소통, 공감 등의 영역에서 논리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이론화할 수 있는 이론틀은 앞으로 마련해야 하는 과제에 해당한다.

2. 텍스트(언어) - 구조와 형상화

문학현상 안에서 문학의 실체를 상정할 경우, 그것은 텍스트로 존재한다. 문학텍스트는 음성으로 실현될 수도 있고 문자로 실현될 수도 있다. 초기에는 문자로 실현된 텍스트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구비문학을 문학의 대상으로 편입함으로써 텍스트의 영역은 음성텍스트와 문자텍스트를 아우를 수 있도록 확장되었다. 문학텍스트의 성립 조거이라든지 텍스트성 등에 대한 논의를 길게 하는 적은 적절치 않다.

문학텍스트는 조직과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한편의 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음성적 층위, 어휘적 층위, 통사적 층위, 그리고 의미의 층위 등에서 일정한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전통적 의미의 시학에서 주로 추구한 내용이기도 하다. 한편 문학텍스트는 그것을 이루는 상위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구조라 할 수 있다. 소설의 경우 장르로서 소설이 갖추어야 할 요건을 중심으로 소설의 특성을 설명할 때, 그것이 구조 개념이 된다. 어떤 경우는 조직과 구조가 맞물려 있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설의 구조와 사회 구조 사이에 상동성이 있다는 거대구조주의적 설명이 이에 해당한다.

문학에 대한 고전적 개념 가운데 하나가 형상화이다. 이 개념으로 본다면 문학은 세계를 주체를 통해 변형하여 언어화한 텍스트로 규정된다. 이때의 언어화는 문학을 염두에 둘 때 형상화라는 말이 된다. 형상화는 대상을 실감있게, 생동감있게 언어로 그리는 일이다. 그러나 실감이나 생동감이 다양하듯이 형상화의 방법 또한 장르마다 같지 않다. 따라서 형상화를 일반화하여 설명하기는 어렵다. 장르마다 해당 장르의 역사 속에서 형상화의 방법을 개발하여 일종의 시학으로 정립하고 있다. 그 시학의 핵심은 역시 문학의 텍스트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이다.

문학연구의 역사 속에서 텍스트의 구조를 밝히는 일이 문학연구의 핵심으로 자리잡아 왔다고 할 수 있다. 텍스트를 이루는 요소가 무엇이고 그 요소들이 어떻게 구성되는가 하는 등이 이 영역의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이는 문학의 가치나 문학과 사회 혹은 세계와의 관계 등에 대한 연계적 고려보다는 텍스트 중심의 논의를 불러오기 때문에 문학연구나 문학의 이론으로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의 실체를 텍스트로 한정할 경우 가장 논리를 분명히 세울 수 있는 장점을 지닌 것 또한 사실이다. 신비평이 아직도 문학연구의 한 방법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까닭도 이러한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텍스트의 텍스트성이 무엇인가를 따지는 일 또한 문학의 속성을 밝히는 작업으로 의의가 부여된다. 이는 근간에 텍스트언어학의 발전에 힘입어 문학텍스트를 언어학적 방법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주로 텍스트의 응집석과 응결성에 주목하여 문학텍스트를 그러한 기준으로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데, 텍스트의 속성이 반드시 문학의 속성과 일치하는 것인가 하는 점에는 의문이 있다.

3. 소통- 독자와 수용 문제

문학은 소통됨으로써 문학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작가의 작품 생산과 독자의 독서 사이를 잇는 과정 전반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인데, 이는 기호론적 실천의 양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기호론적 구조른 논한다면 텍스트의 구조를 문제삼는 것이 되는데 기호론적 소통을 문제삼는 것은 작자와 독자 사이의 의미적 상호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점을 규칙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된다. 이는 기호론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 문학의 텍스트가 작자와 독자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짐으로써 의미의 형성 과정과 그 공유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는 방법론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담론의 방법론으로 전이되는데, 문학의 텍스트를 살아있는 언어로 보는 관점이다.

언어가 살아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언어를 향유하는 주체와 대상이 언어 가운데 포함되어야 한다. 문학의 경우 작가와 독자가 문학텍스트 안에서 의미를 공유하고 의견을 조정하며 이념을 실천하는 역동태로 바라보아야 이러한 이론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작가나 독자 문제를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못 된다. 작가나 독자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역동적 작용을 하기도 하고 그 작용이 제한되기도 하는 한에 있어서 그들을 하나의 기호로 다룰 수 없는 것이다. 바흐찐 같은 이가 문학연구를 일종의 사회시학(소시오포에틱스)으로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 이유 또한 여기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작가와 독자를 심리실체로만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또 있다. 작가와 독자는 개인차원과 초개인적 차원을 동시에 지니는 존재이다. 따라서 작가와 독자의 소통은 개인적 소통과 아울러 사회적 소통이라는 측면을 함께 지니게 된다. 개인적 소통은 문학의 형상화 원리를 따라 논리와 정서가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소통은 개인을 매개로 하여 그 개인이 소속된 집단의 가치, 지향성, 구조 등에 영향을 받아 소통이 이루어진다. 이 경우 소통의 사회학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학교육에서는 독자의 수용 문제를 중요 항목으로 설정하게 된다. 문학교육의 전체 구도는 문학의 생산과 수용, 그리고 재창조를 포함하는 것이지만 학교교육처럼 제한된 영역의 문학교육에서는 학생의 문학수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문학현상은 문학의 생산과 소통, 그리고 그 결과를 새롭게 재생산하는 구조 전체에 연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의 수용과 아울러 수용한 결과를 변용하여 재생산하는 과정과 결과에 주목하여 이에 논리를 부여하는 작업은 문학연구의 새로운 영역에 해당한다.

문학의 소통과 수용을 다루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소통과 수용이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소통의 결과가 객관적 형태로 드러나야 한다. 문학의 수용이 가시화되는 방식은 글쓰기로 구현된다. 글쓰기는 두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객관적인 세계를 형상화하는 글쓰기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수용한 글에 대한 글쓰기이다. 앞의 것을 작품이라 하고, 주로 형상화의 원리를 따라 창작되는 글쓰기 영역이다. 뒤의 것은 평범하게 말해서 평론이라고 하지만, 평론의 영역 또한 다양하여 이론을 수립하는 데서부터 작품의 가치평가를 주로 하는 것, 비평의 비평이라는 메타영역에 걸치기 때문에 일괄하여 설명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글쓰기의 이러한 두 측면을 하나의 단일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창작의 이론화 가능성이 탐색되고 있으며 비평작업에 대한 이론화가 지속되고 있다.

아무튼 문학교육의 구도를 그리는 데서는 독자의 문학수용과 수용한 결과를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며 이에 대한 이론화는 문학교육학을 모색하는 데에 반드시 수반되는 작업이다.

4. 문화 - 개인과 사회적 실천

문학교육을 규정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이론과 가정에서 출발한다.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가정, 문학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가정 등을 바탕으로 문학교육이 규정된다. 그리고 이 규정을 따라 문학을 교육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방향이 설정된다. 이러한 문학교육의 규정은 시대를 따라 달라져 왔다. 문학의 효용을 강조하는 방향이 출발점에 놓이는 것이라면 텍스트의 구조를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도 있었다. 또한 구조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힘을 길러 주어야 한다는 강조는 (프라이) 문학교육이 비평교육으로 접근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문학을 주체들이 실천하는 실천논리가 강조되기도 하였다.
초기에는 문학을 개념적인 설명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그 '내용'을 가르쳤다. 따라서 문학을 가르치는 일은 문학의 이론을 가르치는 것이 되었다. 문학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문학교육의 내용으로 삼고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문학교육으로 상정되었다. 문학을 지식으로 환원하고 그 지식의 구조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학생들이 작품과 이루어내는 교감은 문학교육의 영역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다음 단계에서는 작품이나 텍스트의 완결성을 전제하고, 텍스트를 분석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는 주로 미국의 신비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형식주의 문학이론에 바탕을 둔 문학교육의 개념이었다. 이러한 문학교육에서는 문학현상에서 독자가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지 못한다. 학생들은 문학을 생산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이 전제된다. 이미 존재하는 작품이나 텍스트를 읽고 감상하는 것이 문학교육의 이상으로 설정하는 방법으로 경사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문학은 그 문학을 향유하는 주체들이 수용자이면서 생산자이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본다면 시인이 시를 읽고 소설가가 소설을 읽는다. 또한 민담을 들은 이들이 민담을 증식시켜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요를 배운 이들이 민요를 부름으로써 민요를 다시 생산해 내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문학현상 속에서 문학을 향유하는 일은 문학의 수용과 창조 양편에 걸쳐 이루어지는 일이다. 여기에서 문학을 문화의 개념으로 상정할 수 있게 된다.

문학을 문화개념으로 설명하게 되면 문학교육은 문화교육으로 자리잡게 된다. 문화를 규정하는 방법은 삶의 양식이라는 폭넓은 규정에서부터 인간의 상징적 상호작용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인간이 상징적 상호교섭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논리이다. 또한 문화를 규정하는 데 가치 측면을 중시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문화는 기술적으로밖에 파악할 수 없다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문화는 인간의 삶의 방식이면서 동시에 언어문화 같은 경우는 가치개념이 포함된 교육방향을 유도하는 힘을 지닌 것이다. 문화를 다루는 방식은 그 문화가 속한 영역의 문화문법을 고려한 것이라야 한다. 문학을 문화 차원에서 설명하고 그것을 교육에 적용하는 논리와 방법은 문화논리의 확산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학교육현상의 기본 구도는 이처럼 문학의 생산과 소통과 수용, 그리고 재창조를 통괄하는 제반 국면에 걸치게 된다. 주체가 텍스트를 만들어 내고 만들어낸 텍스트(작품)가 소통되면서 이는 다시 창조되는 문학의 재료가 된다. 문학은 수용자의 수용을 통해 완성되면서 다른 창조의 자료가 된다. 문학교육현상은 문화로서 주체들의 실천을 통해 다른 문학을 창조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와 수용 등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과정과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문화가 成遂되도록 도모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상의 구도 가운데 어느 한 영역만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문학교육의 개념은 부분적임을 면키 어렵다.

물론 이러한 구도를 제도교육에서 수용할 때는 문학교육현상의 어느 특정 측면이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이는 이론과 실천 사이에 빚어지는 틈새로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한계이기도 하다. 아무튼 여기서 강조할 점은 문학교육현상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교육학이 교실에서 문학작품을 읽고 설명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등의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Ⅲ. 문학교육이론 모색의 갈래와 흐름

문학이 학문으로 다루어진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서양의 경우는 겨우 200여 년을 헤아리는 정도이다. 그러나 문학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역사는 매우 길다. 동양의 경우 공자 이후, 현재 우리가 문학으로 인식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문학에 대한 논의는 지속되어 왔다. 서양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문학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문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이는 문학이 제도적으로 가르쳐지기 시작한 연사가 길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을 제도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두 차원을 고려할 수 있다. 하나는 대학에서 학문으로 가르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교육을 지향하는 공적 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 문학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 공적교육기관이라면 문학교육학을 모색하는 것은 대학에서이다.

학문적 蘊蓄이 오래된 경우는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 이론을 정리하고, 이전의 이론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다시 마련하면서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학문계의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학문의 역사가 깊지 못한 경우는 그런 과정을 겪어 나가지 못하게 된다. 극복할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러한 모색은 다양하게 이루어졌지만, 박사학위 논문이 이론의 패러다임을 대체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문학교육의 이론을 추구한 과정을 살피는 데는 그 흐름을 따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여기서는 그 동안 진행된 연구를 모두 사적으로 정리하기보다는 이론의 패러다임 변화를 따라 정리하고 문제점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문학교육이론이 이론으로서 자리잡고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 문학교육이 없었다거나 문학이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인환은 문학의 이해와 창작에 주목하면서 문하교육을 모색하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문학교육론> 평민서당, 1979.) 김윤식은 <한국근대문학과 문학교육>(을유문화사, 1984,) 문학교육과 연관된 몇 가지 문제를 비평의 관점에서 제기하고 있다. 이상섭은 문학교육에 대해 산발적인 관심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나병철은 영국의 철학자 제임스 그리블의 <문학교육론>을 번역함으로써(문예출판사, 1987) 문학교육에 대한 관심을 제고한 바 있다. 그리고 구인환을 비롯한 연구자들이 <문학교육론>을 펴냄으로써(삼지원, 1988) 문학교육이 하나의 학문 분야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시하기도 하였다. 연구 차원에서는 김인환, 김건곤의 <대학 문학교육론1>정신문화연구원의 1985)도 문학교육의 범위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작업이다.
대학에서 문학교육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제도상으로 학위를 수여할 수 있게 된 것이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이무렵에 대학에서 문학교육을 주제로 하여 학위를 맏은 사람들은 최순열, 한주섭, 최현섭 등이다. 이들은 문학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위과정이 설치된 대학에서 학위를 한 것이 아니라 인문대학에서 문학교육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것이다. (최순열, <문학교육론연구-이론의 정립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박사논문, 1987./ 한주섭, <한국문학교육연구-초중등학교 국어과 교육을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박사논문, 1987. /최현섭, <소설교육의 사적고찰>, 성균관대 박사논문, 1988. )

이들 연구는 문학교육 이론의 전사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학교육의 이론 차원이 아니라 문학교육을 실제적 대상으로 하여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이 무렵 문학교육을 이론으로 정립하고자 하는 연구로서 그 첫번째 예는 이대규의 논의를 들 수 있다. (<교과로서의 문학의 구조>, 서울대 박사논문, 1988.) 그는 이 논문에서 문학이론을 문학교육의 내용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문학의 본질과 기능을 문학교육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또한 문학의 이해가 문학교육의 본질 부분이라는 점을 바탕으로 문학이론과 문학작품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리하여 "문학 교육과정은 문학이론의 기본개념이 점진적 누적적으로 교육되어, 최종적으로 문학이론의 기본 구조에 접근하는 과정"(;141)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형식주의 문학이론에 바탕을 둔 것인데 문학교육의 이상적인 상태를 "내재적 문학이론이 교육된 상태"라고 하는데, " 내재적 문학이론의 개념체게와 명제체계의 사용규칙을 습득하고, 이것을 수단으로 하여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분류하며, 널리 합의된 기준에 의하여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156) 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형식주의 문학론의 문학교육론적 원용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이후 이 영역에는 신비평, 구조주의 문학론, 담론의 이론, 기호론 등으로 전개되면서 다양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아울러 포스트모더니즘 이론 또한 여기에 속할 것이다. 문학을 형식론으로 볼 경우는 문학의 실체를 텍스트로 상정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문학교육에서는 텍스트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주체의 관계를 다룬다. 문학의 수용과 내면화로 지칭되는 이 영역은 다른 이론을 필요로 한다.

(1) 세계관과 이데올로기 탐구의 패러다임

문학교육학의 정립을 위한 이론 추구는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전통적인 용어로 한다면 주제론적 접근의 예를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문학텍스트가 세계관의 표현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한 경우가 있다. 문학이 주제를 형상화하는 것이라는 명제는 진부하다. 그러나 주제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다룬다면 이는 이론 개척의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구조주의 문학이론과 문학사회학 이론을 수용하여 문학교육의 논리를 모색하는 데 적용한 예를 볼 수 있다. 박대호는 <소설의 세계관 이해와 그 문학교육적 적용>이라는 논문(박대호, <소설의 세계관 이해와 그 문학교육적 적용 연구>, 서울대 박사논문, 1991.)에서 문학에 표현되는 세계관을 구주의자들의 행위모형에 대입하여 한국 근대소설에 나타난 세계관의 양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레마스의 행위자 모형을 과도하게 일반화한 점이 극복되지 못한 상태로 샐제 작품을 다루고 있다.

같은 소설의 이데올로기를 다루되 그것을 담론 차원에서 다룸으로써 언어적 매개작용에 착목한 연구로는 김상욱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김상욱, [소설 담론의 이데올로기 분석 방법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5.)
그는 소설을 담론 일반이 지닌 공통점과 함께 소설만이 갖는 고유한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담론의 특정한 양식이라고 본다. 담론과 소설의 공통된 성격은 무엇보다도 담론을 통해 담론 생성의 주체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는 담론 주체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역동적으로 재구성된다는 점이라고 본다. 소설 역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실천의 한 형태이며, 효과적으로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기 위해 적합한 구성과 서술을 기능적으로 선택한다고 본다. 이러한 공통점과 달리, 소설만이 지닌 특수성은 담론을 이데올로기로 환원할 수 없으며, 텍스트 전체가 이데올로기의 구성 과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어떠한 이데올로기가 소설의 담론에 존재하는가 하는 점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담론 속에 구성되고 있는가를 밝혀야 한다고 본다. 이를 전제로 담론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규명함과 동시에 담론의 이데올로기가 구성되는 양상과 구성되는 과정, 나아가 방법론이 갖는 교육적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그는 어휘에 부과하는 함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함축을 지속, 확장, 전이, 대체 등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방법론에 입각하여 최서해의 <탈출기>, 현진건의 <정조와 약가>, 염상섭의 [만세전], 이기영의 {고향} 등 20년대와 30년대 리얼리즘 소설의 다양한 유형을 통해 작품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의 구성과정을 살핀다.

이러한 분석 과정을 통해 소설교육의 궁극적인 목표가 학습자를 이데올로기적 주체로 스스로를 형성해 가도록 하는 과정임을 구명하고 나아가 읽기의 과정을 발견적 읽기, 대상의 구성적 읽기, 해석적 읽기, 주체의 구성적 읽기 등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소설 교육과정의 모형을 제시한다. "소설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설 담론에 내재하는 이데올로기와 소설을 읽는 주체의 이데올로기가 서로 소통하면서 서로를 구성해 나가는 역동적인 대화의 과정"이라고 이론틀을 제시한다.

이 연구가 문학텍스트와 주체의 관계에서 이데올로기를 문제삼는 것이라면, 문학교육을 둘러싼 이데올로기가 담론의 형태로 전이되는 과정과 그 결과가 다시 문학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 것이 정재찬의 논문이다. (정재찬, [현대시 교육의 지배적 담론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그는 현재 문학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특정 담론들의 역사적 발생 조건과 과정을 계보학적으로 궁구하고, 이를 통해 그 담론들의 효과를 분석해 낸다. 한편 그들이 지배적 담론으로서 작동될 수 있는 제도적 기제를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 현대시 교육을 지배하는 담론은 작품의 섭렵과 주해 원칙이라고 본다. 작품 섭렵 원칙은 섭렵의 대상으로서 정전의 형성과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된다. 정전이란 우리 사회의 지배적 담론이 자신에게 유의미한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통해 구성한 '문화적 자의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정전의 섭렵은 학생들로 하여금 전망을 확대시킬 수 있도록 하기는커녕, 오히려 폐쇄된 체제 내의 특정한 담론들만 섭렵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우리 현대시 교육에서 작품의 주해 방식으로서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분석주의라고 본다. 그리고 우리의 현대시 교육의 분석주의란 신비평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현대시 교육에서의 신비평은 실상 본래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신비평은 학문중심 교육과정 및 입시제도의 특수성과 맞물리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독법으로 시를 대하게 하고, 작가와 교사의 권위에 종속적인 주체로 성장하게 하였다고 비판한다.

결국 우리 현대시 교육의 지배적 담론은 정전 섭렵과 주해 원칙을 지배해 온 순수시론과 분석주의라는 두 가지 담론이 결합되면서 공고화되어, 기존의 지배적 권위에 순응하는 주체를 재생산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학의 탈신비화와 교수기제의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리의 현존 개념 해체에 따른 새로운 방향의 연구가 요구되는 바, 그 주된 방향은 담론 연구나 텍스트성 연구 등의 문화 연구 틀에서 간취할 것이 그 하나이고, 개인의 해방 문제와 관련하여 학생들 스스로 내면화된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폭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수 기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이상의 두 논의는 문학교육학의 대상이 문학교육현상 자체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수용한 것인데, 문학교육과 문학교육 연구에 있어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패러다임을 제공하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2) 텍스트 체험방법을 중심으로 하는 이론화 방향

문학교육에서 가장 문제되는 사항 가운데 하나는 텍스트를 어떠한 구조로 수용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텍스트와 주체의 관계를 다루게 되는데 수용자가 텍스트의 어떤 측면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점이 문제의 핵심으로 부각된다. 이런 작업은 김중신에 의해 추구된 바 있다. (김중신, [서사 텍스트의 심미적 체험의 구조와 유형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4.)

그는 문학작품은 모든 예술장르 중에서 삶과의 연관성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점을 근거로, 문학작품에 대한 독서 체험은 삶의 체험과 유사하다고 전제한다. 특히 서사 텍스트는 그 본질적 속성상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삶과의 연관성이 크다고 본다. 서사텍스트에 대한 독서 체험이 곧 삶의 대리 체험일 수 있다고 상정하는 것이다.

그는 작품을 읽었을 때 감동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에 착목한다. 이는 문학의 생명력을 높여주는 것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문학성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 돤다. 따라서 문학작품을 교육의 대상으로 삼는 문학교육의 현장에서 작품의 해석이나 감동의 원리에 대한 객관적인 구명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문학작품을 하나의 심미적 대상으로 보고, 작품을 읽는 행위는 그 자체로서 심미주체의 일상적 생활에서 벗어난 체험이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심미주체는 작품 속에 내재된 서사주체의 존재나 행위를 자신의 보편적 평균체험에 비추어 우월이나 열등 혹은 가치 지향성을 판단하게 되고, 이 판단은 체험적 평형성에 자극을 가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방법론으로 채만식의 {태평천하}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 과정을 통해서 동일한 텍스트라 할지라도 심미주체의 보편적 평균 체험에 따라 체험적 평형성에 주는 자극의 정도나 속성이 달라지게 된다고 한다. 문학작품에 대한 감동이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문학작품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인식론적 허무주의를 극복하고자 한다. 또한 이는 문학작품에 대한 감동이 작품 자체뿐 아니라 독자에 의해서도 결정된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서, 분석주의적 방법이 갖는 편향과 수용미학적 방법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문학작품의 해석이나 감상에 대한 객관적 판단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는 의의가 있는 추구이다.

문학의 미적체험은 시에서 정서의 체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정서는 텍스트의 조건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시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 정서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추구한 예는 최지현에게서 볼 수 있다.(최지현, [한국근대시 정서체험의 텍스트조건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7.)

그는 근대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恨'의 정서가 어떻게 전통적 정서라는 의미로 재수용되고 보편적 정서로서 체험되기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탐구한다. 구체적으로, 의미를 실현시키는 텍스트 조건을 '언어 맥락', '비문자적 자질', '문화적 합의'로 항목화하여 개념적으로 정리하고, 1910년대 전후로부터 1920년대 초·중반의 시 텍스트들을 중심으로 정서가 실현된 담론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이 조건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였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근대시의 형성이 일상적 정서가 근대적 삶에 맞게 재분류되고 윤리적 규범의 틀 안에서 심미적으로 형상화되었던 과정과 상응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하였으며, 나아가 문학적 정서 체험이 근본적으로 문화적 합의에 의해 형성되고 분포된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한 것이 그의 시도이다. 문학교육이 작품을 매개로 학생들에게 가치 있는 정서적 경험을 제공하고, 또한 작품을 통해 가치 있는 경험을 창출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는 곧 인간 체험의 가치를 고양시켜주는 문화교육으로서의 문학교육의 지위와 역할이라는 것이다.

한국 근대시를 중심으로 정서의 이론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정서의 일반적 속성과 기와의 연구 결과를 폭넓게 수용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심리학이나 인지이론 등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독자의 텍스트 수용을 이성적 읽기로 한정할 경우 문학의 속성 가운데 정서적 측면을 사상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 문학이 실현되는 것은 구체적인 인간을 통해서이다. 문학을 연구하는 경우는 문학의 수용주체와 연구자 사이에 거리가 있고 따라서 주체를 추상적 개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용자 자체를 고려한다면 구체적인 주체를 상정하게 된다. 신체성이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고, 이러한 측면에 접근한 예가 문영진의 경우이다.(문영진, [한국 근대 소설의 신체성 중심의 읽기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8.)

기존의 이성중심주의적 미학에 대한 반성으로 인간의 본질과 연관되는 것으로서 신체성을 중심으로한 소설 읽기의 방법을 모색하려는 것이 그의 연구 목적이다. 신체성은 정신분석학과 사회학, 그리고 부분적으로 해석학 등 성격이 조금씩 다른 학문 분야를 기초로 탐구되었다. 그는 그러한 기초를 바탕으로 '신체성의 시학'의 구체적 단위로서 정신, 행위, 체험 등 세 개의 하위 층위를 설정한다. 정신의 층위에서는 삶의 욕동과 죽음의 욕동의 대립이 작품의 구성 원리가 된다. 행위의 층위에서는 세계내 존재인 개인과 세계가 행위라는 개념을 매개로 연관된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다. 마지막으로 체험의 층위에서는 본래적인 체험과 사물화된 체험의 결합 방식이 작품의 구성 원리로서 작용한다고 본다.
이러한 신체성 중심의 소설 읽기 방법은, 역동적 독서 체험을 형성시켜주는 것이라는 점, 정체성 조정 효과를 갖는다는 점, 심미적 체험의 심층적 효과를 갖게 된다는 사실, 총체성과의 조우를 체험한다는 등의 교육적 의의를 갖는다고 본다. 이러한 효과들은 일반적인 인문학적 전망과 연결되는데, 첫째 기존의 인식론적 차원에 입각한 개념 우위의 사물 파악 방식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둘째 비판적 시각을 세우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셋째로는 비판의 거점이 없고 비판적 거리를 갖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한계 설정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문학교육은 인간의 전면적인 발전을 지향하며 동시에 예술로서 삶의 궁극적인 척도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이 양자를 동시에 지향하기 위한 방법으로 궁극적인 개별자의 삶과 관계하는 삶의 체험적 관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체성 중심의 소설 읽기를 통해 그러한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보고 있다.

(3) '글쓰기'에 대한 이론화 방향 모색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문학의 생산이라는 측면에 연관된다. 그러나 초기 양상으로는 문학의 생산 그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어떤 정신적 과정을 거쳐 글쓰기를 하였는가 하는 점에 중점을 두고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 가운데 고전문학 영역에서 글쓰기의 원리를 밝히고자 한 예를 볼 수 있다. (이지호,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 방법론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 방법을 대상 해석의 측면에서 구명하는 것을 과제로 설정한 이 논문은, 연암의 창작방법을 해명하고 글쓰기교육의 핵심이 되는 내용생성 방법을 구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과제는 글쓰기가 발상과 표현으로 구분된다는 대전제 아래, 성공적인 글쓰기를 위해서는 글 전체를 지배할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일이라는 점을 전제한다. 방법론으로는 시와 산문을 속성을 대비적으로 구명한 로만 야콥슨의 견해를 빌어 '대상의 의미화' 방법을 추적하고 있다.

대상해석이란 주체가 대상과 관계를 설정하여 대상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특히 대상해석이란 정체성을 확보한 주체가 명료한 대상을 적절한 언어를 사용하여 의미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대상해석은 '주체와 대상의 선택적 결합', '대상과 세계의 관계설정' 그리고 '대상의 의미화'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 중에서 앞의 두 과정은 '대상의 구성'으로 요약된다. 즉 주체는 여러 가지의 사물들 중에서 특정한 대상을 선정하여, 대상의 기본 의미를 파악하고, 그 대상이 세계와 어떤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지 이해함으로써 대상을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 주체는 대상의 기본 의미를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상의 의미화'이다. 대상의 의미화가 유사성에 의한 의미확장과 인접성에 의한 의미전이로 구체화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연암의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연암의 글쓰기가 대상의미의 다층적 분화를 지향하는 한편, 기존 가치체계를 해체하여, 이용후생적 지식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 결론이다.

쓰기교육에 대한 이론화는 실용문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문학교육 차원의 글 쓰기는 문학교육 영역 밖으로 몰려나 있었다. 그 결과 '문학적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있어왔음에도 이론화의 단계에까지 나아갔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러한 상황에서 문학적 글쓰기 교육의 이론화를 시도한 예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최미숙의 [한국 모더니즘시의 글쓰기 방식에 관한 연구]가 그 예이다. (최미숙의 [한국 모더니즘시의 글쓰기 방식에 관한 연구]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그는 이 논문에서 한국 모더니즘시의 글쓰기 방식을 구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학교육 혹은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문학적 글쓰기 방식'을 일반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글쓰기 방식은 글쓰기 주체가 사회 현실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그 구체적인 방식은 그 사회의 언어를 사용하는 독특한 형식적인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것으로, 사회적 삶의 구조와 글쓰기 방식에 자의식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모더니즘 문학에서 그 예를 찾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상과 김수영의 문학에 주목한다.

이상과 김수영의 문학의 모더니즘적 글쓰기를 '사물화된 체험의 재현', '이질적인 세계의 공존', '경험세계에 대한 거리의 설정'이라는 세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하여 문학교육에서의 글쓰기의 성격을 '탈규범으로서의 창조적 언어사용', '형상적 방법의 차용', '내면탐구·현실비판으로서의 자기 성찰'이라는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문학적 글쓰기는 직업적 작가들의 '문학창작'이나 '논리적 글쓰기'와는 다르다는 전제 아래, 기존의 문학교육을 지배해왔던 장르적인 관점보다는 창조적 언어사용이라는 관점이 문학적 글쓰기 교육의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문학적 글쓰기는 작가들의 문학적 형상화 방법을 활용할 수 있는 일상적 개인의 글쓰기 영역이며, 내면탐구와 현실비판을 통해 자기 성찰을 하는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서, '부정적 인물의 내적독백', '갈등의 표출과 미해결의 구조', '이질적 요소들의 비논리적 연상', '현실과 탈현실공간의 대립'이라는 네 가지의 방식으로 정리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는 대비적으로 글쓰기가 주체의 욕망과 사회적 경험을 조정하는 과정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글쓰기의 각 요소들은 상호 매개되어 있다는 점을 전제한 연구가 있다. 김혜영, {한국 모더니즘소설의 글쓰기 방법 연구-시간 구성 원리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이는 글쓰기의 조건이 인식 조정의 맥락인데 이는 장르 구속성에 의존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장르 구속성 가운데 특히 주목하고 있는 사항은 시간론이다. 시간을 소설의 글쓰기 방법 가운데 교유한 속성으로 보는 것이다.

글쓰기는 의식의 문자적 재현의 기제를 통해 자기를 객관화하는 과정이라는 점과, 소설의 서사적 속성이 삶의 이해와 연관되며 소설의 허구적 상상력은 가능성의 범주와 관련된다고 본다. 이 둘이 역동적 창조 능력인 형상화를 실현하는 동인임을 밝히고 있다. 최명익, 이상, 박태원 등 1930년대 소설의 시간 구성의 방법을 통해 인식 양상을 고찰하고 있다.

텍스트 분석의 층위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 및 서사 진행의 방향으로 나누어 접근하고 있다. 분석을 위해 관계와 질서화의 서사 구성 층위를 객관적 시간, 내면의 시간, 서사 진행 시간이 형성하는 시간 차원으로 전환하고, 글쓰기가 인식의 조정 및 욕망의 우회적 실현을 가시화하는 과정임을 밝히고 있다. 모더니즘소설의 시간 구성 방법을 토대로 시간 구성의 의미 형성 기능을 분석하였는데, 시간 구성이 발생적 심미 체험의 형상화, 성찰적 인식 능력의 확대, 소통 체계의 재구조화, 정체성 정립의 방법적 매개로 기능하고 있음을 밝혔다. 인식 조정을 위한 시간 구성이 글쓰기의 방법적 준거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들 연구는 글쓰기를 문학의 장르로 형식화되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글쓰기의 이론화에서 간접적인 방법을 원용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문학교육의 이론화를 위해서는 주체의 글쓰기 행위에 한 단계 더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다.

(4) 문학적 담론의 생산과 창작의 이론화

제도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문학교육에서는 '위대한' 작품을 창작하는 일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문학교육에서 창작의 일반원리를 문학적 글쓰기의 이론으로 정립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기왕의 장르상 문학적 창조의 예를 대상으로 논리를 구축하고, 거기서 문학교육의 일반 원리를 추구하는 것은 방법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문학의 장르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변신을 거듭한다. 부르주아 사실주의에 기반한 전통적인 소설 형식이 파괴되고 등장한 현대소설은 이전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소설의 새로운 형식과 기법은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담론적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담론의 생산방법을 문학교육과 연관지어 이론화하고자 하는 연구의 예를 볼 수 있다. (최인자, [한국 현대소설 담론 생산 방법 연구-반담론과 문학교육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7.)

그는 이전의 전통적 소설이 동일성의 미학을 바탕으로 객관세계를 형상화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을 전제한다. 이에 비해 현대소설은 비동일성을 바탕으로 한 미적 주관성이 지배적 담론과의 대결을 통해 소설 텍스트에 드러나데, 이를 반담론으로 규정하고 현대소설의 반담론 전략을 설명한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미학이론을 담론의 틀과 결합하여 반담론을 개념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대소설의 새로운 기법 형식을 유형화한다. 위반의 반담론으로서 '자기 반영성'을 든다. 동일성의 미학을 전제하는 전통적 소설이 객과적 세계를 그리는 데 역점을 둔다. 이에 비해 현대소설은 동일성의 미학을 위반하는 담론으로 자기 반영성이 특징이라는 것이다. 동일성의 미학을 거부하고 수립되는 미학은 해체의 반담론을 지향하는데 그 예로 '에세이즘'을 설명하고 있다. 전자는 '메타언어적 글쓰기'를, 후자는 '반목적론 글쓰기'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반담론 생산의 글쓰기 과정의 원리이다.

이러한 연구는 언술행위를 소통 중심으로 보던 기존의 글쓰기관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글쓰기를 다채로운 의미론적 실천의 입장에서 볼 것을 요구한다. 이는 문학교육이 소통과 인식을 중심으로 한 단일 규범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생산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갈 것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담론의 생산에 대한 일반 이론을 지향할 수 있게 한다.

어떤 이론이든지 그 방향은 다를 수 있지만 기존의 논의를 근거로 하게 된다. 기존의 창작교육에 대한 논의를 수렴하고, 새로 만들어지는 이론을 교육현장에 적용함에 있어서 고려하여야 할 사항을 검토함으로써 창작교육의 현실태를 드러내고자 하는 예가 있다. (유영희, {이미지 형상화를 통한 시 창작교육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이 논문은 창작교육 전반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이미지 형상화를 중심으로 한 시 텍스트 창작 방법과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감각적 사고와 창조적 사고가 창작주체의 창작 행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그러한 사고가 이미지 형상화 방식으로 어떻게 구체화되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시 텍스트 생산에서 '이미지 형상화'는 창작주체가 능동적으로 행하는 이미지 구성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개념이라고 본다. 이 개념을 도입하여 창작주체와 사고 작용의 관계뿐 아니라, 창작주체의 이미지 형상화 과정을 고찰하고 있다.

이미지 형상화는 이미지의 생산 방식과 효과, 이미지의 조직과 표현 방법이라는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 이미지 생산 방식에는 이미지의 차용과 변용, 이미지의 해체와 재구성 방식이 있으며 반성적 이미지와 환상적 이미지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구분 설명하고 있다. 이미지의 조직과 표현 방법에는 단일한 이미지 표현과 대립과 조화의 이미지 표현, 반복과 나열의 이미지 표현이 있으며, 시각적 배열을 통한 이미지 표현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생산 방식 및 표현 방법은 현대시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과정에서 도출된 것이다. 현대시의 이미지 형상화 방식을 문제삼음으로써 현대시가 구성되는 방법 가운데 하나를 추적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창작 과정을 이미지 구상, 이미지 구축, 자기 검증의 세 단계로 설정하고, 각 단계마다 구체적인 교육적 국면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지형상화는 시창작의 중요한 요건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면서 동시에 집단적 속성을 지닌 것이라는 점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문학교육에서 창작을 문제삼을 때 문학을 과도하게 경직된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을 피하는 것이 근래의 합의된 사항이다. 이는 모국어교육으로서의 국어교육에서 표현 행위는 정확성 내지 소통가능성의 차원을 넘어서 효과성 내지 문화 계승과 창조의 문제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과 연관된다.

문학교육 차원의 창작교육의 범위를 넓혀 표현교육으로 지향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예를 볼 수 있다. 염은열, {대상 인식과 내용 생성의 관계에 대한 표현교육론적 연구-기행가사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이는 모국어교육으로서의 국어교육의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표현교육의 내용과 체계를 구체화하기 위하여, 대상 인식과 표현 내용 생성의 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표현주체가 텍스트를 생산하기 위하여 어떻게 대상을 인식하고 표현할 내용을 생성하는가 하는 점이 이 논문의 출발점이다. 이 논문은 기행가사를 대상으로 하는데, 기행가사는 대상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서술 원리가 되는 표현물이라는 점을 전제한다. 표현주체와 표현 대상 중에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기행가사의 내용 생성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눈다. '대상에 대한 즉물적 인식의 질서화' 유형, '대상에 대한 관념적 인식의 구조화' 유형, '대상에 대한 주정적 인식의 투사' 유형이 그것이다.

기행가사에서 추출한 내용 생성 유형이 표현 일반의 내용 생성 방식으로 일반화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그 결과 기행가사의 내용 생성 유형이 관찰, 앎, 투사라는 일반적인 기제로 抽象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동시에 표현주체가 처한 사회·역사적 상황에 따라 표현 양상이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하여, 대상에 대한 인식 태도와 표현문법 및 표현문화가 표현의 특수성과 관련된 변인임을 밝혀내었다.

마지막으로 표현교육의 전반적인 구도하에 표현 지식이 어떤 성격을 지니며 어떤 위상을 지니는지 살펴보고 있다. 문학 지식과 언어 지식과 표현 지식과의 관련성을 살펴보고, 표현 기능과 표현 전락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표현 지식은 표현 자료를 통해 발견되고 표현 활동으로 실현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표현교육은 이해에 기반한 활동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얻고 있다.

문학교육학의 이론은 문학교육학 내부에서 만들어내는 이론을 문학이론 전반과 연관지어 가면서 스스로 증식되어 간다. 이는 인간, 언어, 문학이 맞물려 이루어지는 어느 영역의 이론이든지 서로 상관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문학이론을 교육에 적용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고, 문학교육이론이나 문학교육학 이론은 문학이론 일반에 기여할 수 잇어야 하는 것이다.

Ⅳ. 종결 없는 이론의 복선적 진전

1. 문학현상의 복합적 다층

문학교육학의 이론 정립을 위해 근간에 다양한 노력이 경주된 것을 확인했다. 문학교육학은 문학현상에 대한 설명이 그러하듯이 인간의 자기규정을 전제로 출발한다. 따라서 이론의 방향은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데 따라 달라지게 된다. 인간의 복합성과 중층성으로 인해 인간을 규정하는 방식 또한 간단치 않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데 대한 추구는 끊임없이 이루어졌고 또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인간은 성찰적 존재이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삶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인간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현재의 존재를 초극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조건에 해당한다.

인간 규정의 복합성은 이론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근거이다. 인간에 대한 규정은 구성되는 것이지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성찰적 사유를 통해 만들어 나가는 존재인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가소성을 뜻하는데 다른 존재와 달리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이다. 가소성으로 구성되는 인간을 다루는 문학의 개념 또한 가변적 형성 가능성을 인간개념과 공유한다. 문학교육학 또한 그러한 속성을 지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을 다루는 문학과 문학을 교육하는 문학교육현상의 복합적 교착현상은 문학교육의 이론이 중층복합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교육학 이론은 복합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여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2. 문학/문화 창조와 그 이론화

문학교육학이론은 문학교육현상 전체를 대상으로 포괄한다. 그 실현 방법은 부분적으로 구체화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문학교육학을 위한 이론은 통합적으로 구축을 지향한다. 그런 뜻에서 문학교육학 이론은 문학교육현상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라야 한다. 그런데 문학교육학 이론은 대체로 텍스트 중심으로 전개된 이론들이었다. 텍스트 중심의 이론에서는 작품의 작품성을 강조하게 된다. 그 결과 작품으로 불리는 문학이 과도하게 신성시되고, 그러한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를 신격화함으로써 문학이 문학을 향유하는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런가 하면 문학현상에서 독자의 위치를 과도하게 격상함으로써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위치를 높이는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문학의 실천 국면에 역점을 두는 경우는 언어활동으로서의 문학을 강조한다. 그러나 문학현상은 현상으로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문학교육현상은 문학현상이라는 실체로 존재한다.
문학을 기호론적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상징적 상호교섭작용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문학교육 또한 그러한 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문학현상에서 문학의 창조와 재창조를 고려하는 문학교육이론은 이전의 이론이 고려하지 못한 국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문학창작의 국면이다. 문학창작은 평명한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학현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반 과정 중에서 문학을 만들어내는, 개인적 집단적 그리고 사회적 실천 전반을 포괄하는 것이라야 한다. 학생들이 이전부터 전해오는 노래를 익히고 배우는 것에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구연함으로써 이야기의 기본 골격을 익히고 그것이 나중에 문학을 재창조하는 데 정신적 자양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문학교육에서 문학창작과 연관된 교육 내용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 작품을 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문학교육에 내용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교육과정상의 목표에 대해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이는 이런 논의를 하는 이들을 문학주의자라고 오해하는 데서 빚어지는 결과이다. 작품이라는 것을 과도하게 가치를 높여 놓은 것을 타파해야 한다는 논지를 마치 작품이라면 전문가의 고급문학만을 뜻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것이다.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이야기를 만들고 시적 형식으로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하나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어느 시대건간에 그 시대 최고의 감성과 논리를 담은 걸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바탕은 보통교육 긴간에 길러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능력이 길러질 수 있는 가능성을 잘라 버리는 것은 교육적으로 죄악에 해당한다.

문학창작의 문제가 문학교육이론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데 대해 보통교육에서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견을 제출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오해이다. 보통교육에서 가르치자면 교육내용이 위계화되고 계열화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의 경우 그 위계화와 계열화가 문학 자체의 기준으로 이루어진다기보다는 문학을 둘러싼 외적 조건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문학교육의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이러한 때문이다.
문학교육현상 가운데 문학의 창조와 재창조를 배제한다면 이는 문학교육의 이상을 잘못 설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학교육이 문학적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 낼 수 있는 것이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교육의 이론 또한 문하걱 가능성을 최대치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야 한다. 이 과정에는 문학의 창조와 재창조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3. 이론의 이론화

문학교육학 이론이 성립되면 그 이론에 대한 정당성과 발전 가능역 등을 검토하는 논리가 설 수 있다. 이를 '이론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는 문학교육학 이론에 대해서는 메타이론이 된다. 문학교육학 이론이 성립되면 그 이론에 대한 자성적 진척을 위해서도 그러한 이론의 전개는 필연적 과업이 된다.
문학교육학 이론은 문학이론과 학제성을 지닌다. 앞에서 본바와 마찬가지로 문학교육학 이론은 주체의 문제를 둘러싼 이론과 연관된다. 아울러 텍스트를 둘러싼 제반 이론과 연관되며, 문학교육현상이 언어적 소통 문제를 다룬다면 소통의 문제와 연계지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고 그 이론 탐구가 필요해진다. 또한 문학교육학 이론은 그것이 문화적 실천행위라는 점에서 문화이론과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또한 문학교육학 이론이 학생의 문학적 감수성과 문학적 논리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인식론이나 윤리학과 연관된다. 문제는 얼마나 넓은 범위에 걸쳐 학제성을 지니는가 하는 점을 따지는 것보다는 그러한 학제성이 얼마나 유용한 것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짚어져야 할 것이다.

4. 문학교육의 이론과 실천

문학교육학은 이론의 학이면서 실천의 학이라는 이중성을 지닌다. 문학교육현상은 문학을 수용하고 재창조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교육현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러한 교육작용에 주목하는 이론이 개발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현상 자체가 지니는 속성을 중심으로 하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문학교육학은 그 이론 정립의 도정에 있어 왔고, 지금 있고, 앞으로도 그 도정을 벗어나서 완결성을 띠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적 속성을 자임하는 것이 문학교육학의 특징이다. 문학교육학 이론이 완성되고 그 완성된 이론을 실천하는 것으로 문학교육이 완성된다고 한다면 이는 이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러한 이론의 포기는 문학교육학을 실용학 일변도로 변질시켜 스스로 한계를 만드는 격이 될 것이다.*

2002-07-20 17: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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