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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의 독서지도 연구게시판입니다.

  마태복음 관찰노트
  이영식
  

  • 관찰목표: "의미는 맥락이 결정한다"라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기본 원리를 충실히 따라서 마태복음의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 본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고려해야할 맥락 세가지는 역사적 맥락과 신학적 맥락, 그리고 서사적 맥락이다. 여기서는 신학적 맥락과 서사적 맥락만을 살펴본다.

    I. 신학적 맥락

    [약속과 성취]

    마태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말씀을 예수께서 성취하신다는 맥락을 줄기차게 견지한다. 예컨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동기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1:21-22)라고 기록한다. 물론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은, 그리고 요한복음이 동일하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지만 마태복음은 다른 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구약을 많이 인용한다. 이는 예수님의 출생에서 사역, 그리고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언약과 성취"라는 맥락에서 조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약속과 성취라는 신학적 맥락은 마태복음의 문학적 구조 자체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기존의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확실해 진다(5:17-18). 따라서 다른 복음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마태복음은 구약적인 배경을 깊이이해하고 읽어내야 하는 책이다.

    [하나님 아버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꼭 같은 말이라도 그 말의 의미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의 종류와 깊이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6:9) 라고 부르도록 제자들을 가르치신다. 사실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된 산상수훈은 인류가 달성할 수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을 요구하신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형제와 불화한 일이 있으면 먼저 그와 화해하고 난 다음 예물을 드려야한다(5:23-24). 남을 구제할 때는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고 하신다.

    의식주를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한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처럼 수양을 통해 이처럼 높은 도덕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높은 도덕성은 또한 가능한 일인데 하나님과 바르고 친밀한 관계 안에서 그렇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동기로는 어림도 없지만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류 최대의 과제인 생존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에도 생존은 인류의 최대 이슈이다. 경제를 중심으로 모든 세계가 재편되고 있다. 고유한 가치들은 경제논리에 항상 밀리고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의식주를 구하지 말고 "그 나라(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일)를 구하라"라고 하시는데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먹고 사는 일은 책임 지실 것이기 때문이다(마6:32-37).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희랍 철학자들처럼 우주만물의 제 일원인자와 같은 비 인격적 철학적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우리와 생동하는 관계를 맺고 계시는 살아계신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에게 부모와 같이 좋은 마음을 가지고 계시며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또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신 인식처럼 하나님을 거룩하고 높은 분으로만 인식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는 분으로 이해하셨다. 마태복음 전체에 깔려 있는 예수님의 교훈과 사역들은 "하나님과 바르고 친밀하고 풍성한 관계"라는 맥락을 떠나서 올바르게 이해 될 수 없음이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II. 서사적 맥락

    1. 공간적 맥락

    1) 광야

    광야는 영적으로 단련을 받는 공간이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훈련을 받고 거거서부터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시작하였다(3:).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성령님에 이끌려 사탄의 시험을 받은 곳도 광야이다(4:1). 또한 광야는 오병이어의 이적이 일어나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임이 극명하게 드러난 곳이기도하다(14:13). 특히 마태복음이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라는 점을 염두게 두고 기록하는 것을 감안할 때 마태복음의 광야가 지닌 공간적 의미를 모세오경의 광야생활과 비교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의 시험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성인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예수님은 광야의 시험을 넉넉히 통과하신다. 광야에서 만나가 내리듯이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오병이어를 가지고 5000명을 먹이신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광야는 모세 오경의 광야와 섬세하게 대조해 볼 필요가 있다.

    2) 산

    산은 마태복음에서 매우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서 제자들과 무리들을 가르치시고(5:1), 산에서 엘리야, 모세와 대화하신다(17:1). 감람산에 올라가셔서 제자들을 가르치시고(24:3),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곡하게 기도하신다(26:36).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산은 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하나님의 임재의 공간, 곧 성스러운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을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셨듯이 예수님은 팔복산에서 산상수훈을 선포하신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대화(기도)하였듯이 예수님은 산에 가셔서 밤 늦도록 기도하신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듯이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난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이며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변화산 체험은 "성경말씀의 성취"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3)갈릴리 바다

    복음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 중 하나이다. 성경에서 물, 혹은 바다는 이중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노아의 홍수처럼 물은 심판의 도구로, 또는 혼돈의 상징으로(요나서의 경우처럼)언급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생수라고 말씀하시어 물이 생명과 연관하여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태복음에서 갈릴리 호수는 상당히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제자들은 여러번 그곳에서 풍랑을 만난다. 갈릴리 바다는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에게 생업의 터전이다. 그런데 그곳에 주님이 임하시자 고기잡던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신분이 변신된다. 휘몰아치던 풍랑은 주님의 주권앞에 잠잠해진다. 주님은

    4) 성전

    유대전통에서 "성전"이라는 공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요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의 증표이기도 하다. 그들은 성전신학을 발전키켜 단순히 성전 건물이 자기들 가운데 있기때문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보시기에는 장사꾼들에게 더럽혀 질대로 더럽혀져 "강도의 굴혈"이 되었다(21:13). 물론 그들은 유대 지도자들과 결탁된 장사꾼들임에 두말할 나위 없다. 그 성전은 필연코 무너지고 말것임을 예언하셨다(24:2). 제자들의 놀라움은 컸다. 예수께서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성전의 역할이 끝나고 자신이 성전이 될 것을 예감하셨다. 그리고 성전의 웅장함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성전 될 것과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을 예고하신다. 그 덕분에 법정에 선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마26:) 라는 말로 고소를 당하게 된다.

    사실 성전은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영적 공간이다. 어렸을 때적어도 일년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성전을 방문하셨으며 공생애 기간동안 수 차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셨다. 마지막 예루살렘 사역에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사건은 복음서에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규정하셨다(21:13)

    5) 회당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는 중요한 장소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매 안식일마다 방문하신 것 같다. 성전은 예루살렘에 하나 뿐이지만 회당은 동네마다 있어서 유대인들의 정신적 영적 중심공간의 기능을 수행한다.

    6)예루살렘과 나사렛/가버나움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영적, 정치적 중심지이다. 반면 나사렛과 가버나움(예수님 사역의 주 활동지)는 별로 주목받지 못한 동네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역을 전개하면서 그 상황이 뒤바뀌게 된다. 오히려 영적으로 지도력을 발휘해야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할 공간으로 인식된다. 그곳은 성전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 성전은 참다운 영적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오히려 예수님 자신이 그 기능을 감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이처럼 예루살렘과 갈릴리/가버나움은 매우 아이러니하게 대조를 이룬다.

    2. 주요 등장인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성령님, 세례요한, 제자들, 유대 지도자들(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 사두개인, 헤롯왕, 장로들), 무리들(병자, 귀신들린 사람, 여자, 어린이, 기타 소외된 사람들 포함), 예수님의 부모형제, 세례요한, 사탄과 귀신들.

    이들 인물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우호적이거나 대립적인 관계가 설정된다. 특히 유대 지도자들과 예수님의 관계는 점차 악화된는 것으로 선명한 플롯을 관찰 할 수 있다. 한편 마태복은 4장에서 사탄과 예수님은 극적으로 대립하며 예수님께서 승리를 거두신다. 그렇다고 사탄이 완벽하게 물러난 것은 아니고 일시 후퇴한 것 뿐이다. 따라서 마태복은 전체를 통해 사탄은 예수님과 적대 관계에 놓이게 된다.

    한편 제자들마저 예수님께서 가시려는 길을 온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여 큰 칭찬을 듣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말리다가 "사탄"이라는 꾸지람을 듣는다. 예수깨서 체포될 당시 열 두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만다. 특히 사탄의 사주를 받은 가룟 출신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 넘기기까지 한다.

    그나마 끝까지 예수님을 따른 인물들은 오히려 평소 예수님을 섬기던 여자들뿐이었다(마27:55-56).

    3. 플롯

    예수님의 일생을 핵심 사건별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족보--> 탄생 --> 세례요한과의 만남 --> 사탄의 시험 --> 제자들을 부르심 --> 사역(전도, 가르침, 치유, 기도, 긍휼사역 등....) --> 수난예고(1,2,3,4차), 예루살렘 입성 --> 예루살렘 사역 -->마지막 만찬 --> 체포되심 --> 재판 받으심--> 십자가 처형 --> 부활 --> 재자들의 재소명 -->승천(대 위임명령)

    마태복음은 핵심인물들과 예수님과의 갈등관계를 중심으로 뚜렷한 플롯이 있다. 유대 지도자들과의 갈등관계가 점차 심화되어가고 있으며 결국 그 갈등의 결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주인공이 죽으면 끝나지만 마태복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생생하게 보도한다. 그리하여 이야기가 극적으로 반전하여 십자가 죽음으로 끝났으면 승리했을 자들이 패배하고 패배자처럼 보였던 예수께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된다.


    나가는 말

    서사 분석적으로 성경을 읽으려는 것은 될 수 있는대로 본문의 맥락을 본문 안에서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해석적인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정도의 맥락을 짚으면서 마태복음을 읽어보자. 물론 이 밖에도 서사적 관점에서 분석할 거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마태복음 본문보기]

  • 2002-05-26 18: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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