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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의 독서지도 연구게시판입니다.

  [강의]독서학습의 신학적 기초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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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독서학습교육의 목표는 꿈과 덕과 실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꿈과 덕과 실력을 균형 있게 갖춘 인재의 모델을 성경에서 찾는다. 구약에서는 바벨론 포로기의 명재상 다니엘과 같은 인물이요 신약에서는 바울과 같은 인물이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꿈과 덕과 실력을 갖춘 궁극적인 모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독서학습 교육은 이러한 훌륭한 인물을 길러내는데 "독서"의 힘을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사역이든지 그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데 독서학습교육이 교회의 사역이 될 때에는 반드시 신학적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 신학은 사역에 있어서 나침반과 같이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신학 없는 사역은 오래가지 못한다.

신학(神學)을 가장 간략하게 정의하자면 "신에 관한 학문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학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경험하는 신앙의 체험들과 현상들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인간의 인식 범위를 훨씬 넘어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신이 초월자(超越者)로 만 계시다면 신학은 무의미할 것이다. 하나님은 초월자임과 동시에 계시자(啓示者)로 우리에게 오신다. 여기에 신학의 가능성이 있다. 신학은 자신을 다양한 모습으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에 관하여 비록 한정적이지만 인간의 언어를 가지고 설명하고 기술하며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이다.

어떤 신학도 하나님의 다양한 모습을 총체적으로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언어와 인식론적 한계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신학적 관점이 요구되는 것이다. 예컨대 여성신학은 여성의 경험과 관점으로 성경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며 민중신학은 민중의 관점에서, 해방신학은 강대국의 식민지 정책에 억눌려온 남미인들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관점으로 성경을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서신학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책을 사용해 오셨는지 그 흔적을 더듬어 찾는 작업이다. 더 나아가서 "책"이라는 관점으로 성경을 꿰뚫어 보고 독서학습 교육의 신학적 기초를 놓고자 하는 것이다.

필자는 독서학습교육이 한 때 유행하다가 사라지는 일회성 사역이 아니라 다니엘과 바울 같은 꿈과 덕과 실력을 갖추고 세상을 변혁시키는 사람들을 길러내는데 오래 쓰임 받는 사역이 되었으면 한다.

II. 책과 삼위일체 하나님


1. 책 쓰시는 하나님


주로 책은 사람이 쓰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친히 책을 쓰셨을까? 출애굽기 말씀(출24:12, 32:15-16, 34:1-4, 27-28)에 보면 하나님은 친히 돌판에 율법과 계명을 새겨서 모세에게 건네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열 가지 계명만 간략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신앙 생활에 이르는 광범위한 법전을 주신다. 출애굽기 20장에서 31장까지 무려 12장에 걸쳐 있는 방대한 내용을 모세가 아무리 기억력 좋다 하더라도 다 암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기억력의 한계를 인정하시고 자신의 말씀을 친히 기록하여 주신다.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신 글을 다른 표현으로 "언약서"(言約書)라고 언급하신다. 모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서를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려줄 사명이 주어진다(출24:7). 이런 경험으로부터 모세는 하나님이 책을 기록하시는 분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32:32)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이 책의 저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책의 저자일 뿐만 아니라 단순하게 "기록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치른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을 때 이 사건을 "기록하라"고 모세에게 명하신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세운 언약의 내용을 그분의 지시에 따라 책에 기록한다(출34:27). 이처럼 하나님의 종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록하라고 명하신 바를 열심히 글로 써서 책으로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이 그의 사역가운데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책을 기록하라는 말씀은 예언자들에게도 주어진다. 사실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책을 내고 싶어서 기록했다기보다 그것은 하나님의 요구였다.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기록하다(되다)"라는 말이 무려 303번이나 사용되었다. 그 가운데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기록한 역사도 있으나 대부분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기록되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여 백성들이 반복적으로 읽고 신앙과 행위의 지침으로 삼기를 바랐던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책을 저술하고 그 저술된 책들이 끊임없이 읽혀지기를 기대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이 저술하신 책에 자신의 계획과 생각과 마음을 담아 놓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계시의 책, 신앙과 윤리의 표준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성경에서 이런 계시성을 제거한다면 읽어서 유익한 고전으로만 치부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는 책을 먹으라고 하시고 앞으로 이루실 역사를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책에 기록하여 두시며 뿐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그리스도인의 행적에 관하여 생명 책에 자세히 기록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을 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는 것은 곧 시대를 읽는 것이요 자신의 사명을 읽는 것이다. 모든 책의 주제는 한 길 하나님의 경륜으로 통한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책을 저술하시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이해하시고 돕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기억능력에 한계가 있다. 중요한 말씀을 일생동안 한자도 틀림없이 기억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세대와 세대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담아서 전달하는 그릇으로 너무 빈약하다. 즉 시간적인 제약을 받는다. 또한 인간은 공간의 제약을 받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전하는데는 목소리만 가지고 부족하다. 책은 한 개인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생각을 유통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매체이다.

작가는 죽어도 책은 남는다. 작가가 글을 짓는 것이 아니라 글이 작가를 통하여 탄생한다고 보는 관점은 일리가 있다. 책은 작가를 떠나는 순간 그와는 별개로 생명력을 지닌다. 별 가치가 없는 책은 시간이라는 불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된다. 그러나 좋은 생각을 담은 책은 세월이 갈수록 용광로에 수 백 번 담금질된 정금처럼 더욱 진가를 드러낸다. 인류가 남긴 위대한 정신 유산이 책 속에 담겨 있다고 볼 때 책 중의 책, 인류의 수 천 년 역사 속에서 정금처럼 단련된 책은 성경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고전중의 고전으로 인류 문명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쳐왔고 앞으로도 계속 미칠 것이다.

요컨대 책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보존하고 유통하기 위해서 선택한 생각 그릇이다. 책의 사람 사도 바울은 이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사실 좀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우주와 역사 자체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책(TEXT)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점을 일찍 깨닫고 있었다. 즉 "창세로부터 그(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기"(롬 1:20)때문이다. 하나님이 쓰신 책으로서의 우주는 하나님의 신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는 천체를 관찰하고 세포 속을 들여다 보면서 하나님을 알게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신을 시간속에서 계시하시기에 역사는 또다른 하나님의 텍스트이다. 시대를 읽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읽어 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책들은 우주와 역사라는 더 큰 책의 일부며 특별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2. 탁월한 독자(讀者)인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탁월한 독자(讀者)이셨다. 예수님의 생애 속에는 책이 녹아 있다. 12세 때 성경학자들과 여러 날 동안(적어도 3일 이상) 진지하고 깊은 토론에 몰두하신 나머지 부모들이 고향을 향해 떠난 것도 깨닫지 못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선언서를 성경 속에서 찾으셨다. 공생애를 시작할 무렵 자신이 자라나신 나사렛 회당에서 찾아 읽으신 이사야 61장 중의 말씀이 곧 그분의 사명 선언서 였다. 예수님 당시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성경책과는 형태가 판이하게 다르다. 양피지에 기록된 성경은 그 부피가 엄청난 것이었다. 구약성경만 다 모아도 트럭으로 한 대분은 족히 될 것이다. 예수께서 평소에 성경책을 잘 알지 못했다면 그 많은 두루마리 중에서, 장 절도 표기되어 있지 않는 두루마리에서 자신의 사명선언서를 정확하게 짚어내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성경책은 예수님의 사역지침서이기도 하였다. 성경책에 기록된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으며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근거하여 예루살렘 성전 청결의 채찍을 휘두르셨다. 예수의 모든 삶과 사역, 심지어 탄생과 죽음까지도 기록된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은 것이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책은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나침반과 지도와 같아서 성경책을 떠나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책을 읽고 주제를 파악하는데 탁월하셨다.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은 구약성경을 재해석하신 것으로서 그 말씀을 듣고 무리들이 무척 놀랐는데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마7:2-29). 마태복음 5장에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하여 조목조목 재해석해 주신다.

예수께서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는 무엇이었을까? 마태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는데 예수께서는 신앙적인 맥락과 역사적 맥락, 그리고 서사적 맥락을 올바로 짚으시면서 성경을 해석하셨다. 신앙적 맥락이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시는 데서 볼 수 있다. 역사적 맥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과 그 언약의 성취라는 맥락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실천하셨다. 그리고 서사적 맥락에서 글을 이해하는 것은 책 한 권을 횡으로 꿰뚫어 보고 중심생각을 파악하는 것이다. 실로 예수께서는 수 십 권의 구약 성경을 단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으셨다.

독서학습에서 문맹(文盲)과 비문해자(非文解者)는 구별된 개념으로 사용한다. 전자는 문자 자체의 의미를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후자는 글을 읽고 저자가 말하는 바 핵심 내용을 한 두 문장으로 요약해 내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공교육에 힘입어 우리나라에 문맹은 거의 없으나 비문해자는 허다하게 많다고 본다. 책 한 권을 읽고 중심생각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인생의 주제를 파악하고 시대의 주제를 파악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여 꿈과 덕과 실력을 갖춘 탁월한 인재가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예수께서 직접 책을 쓰시지는 않았지만 그분은 탁월한 교사이셨다. 그는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서 백성들에게 가르치셨다. 얼마나 가르치시는데 몰두하셨는지 엠마오 도상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마음에 수용하지 못하는 두 제자에게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풀어서 가르치는 모습을 통해서 엿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냥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실 수도 있었지만 책을 풀어 설명하는 방법을 택하셨다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격만 닮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사역하시는 방법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왜 책을 사용하셨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독서학습이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탁월한 방법이라는 점은 확실해 진 셈이다.

예수께서 탁월한 독자라는 점은 책을 몸으로 읽어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경말씀을 밥벌이로 사용하시지 않았다. 성경말씀에 헌신하셨다. 그 말씀이 자신의 인격과 삶과 관계와 공동체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사셨다. 책을 몸으로 읽으신 것이다. 독서의 가장 높은 경지는 몸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과 계획이 담긴 성경책은 우리의 몸으로 읽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구절 한 구절 말씀이 우리의 피와 살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들의 개인교사 성령님

성경책과 성령님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과 더불어 성령님의 공저(共著)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사역 가운데 중요한 것이 성경말씀을 독자들에게 깨우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탁월한 독서지도교사이시다. 독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맥락 속에서 문장들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데 있어서 중요한 맥락 세가지는 서사적 문맥과 역사적 언약적, 그리고 신앙적인 맥락이다. 성경을 읽는데 있어서 특히 중요하며 성경읽기의 궁국적 목적이 되는 것이 하나님과 바르고 깊은 관계로서 신앙적 맥락이다. 신앙적 맥락이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바르고 친밀하고 풍성한 관계의 맥락이다. 성령께서는 성경 본문을 바로 이러한 신앙의 맥락에서 조명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때문에 성경이 모든 신앙인의 영적인 양식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에 의하면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요16:13). 더 넓게 보면 신약성경 전체가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에 관하여 성령님께서 깨우쳐 주신 바를 기록한 책이다. 다시 말하여 신약성경은 기록자가 현장을 취재한 보도 기사가 아니라 자신들이 경험한 바를 성령께서 조명하시는 바에 따라 반추한 글들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으나 오히려 그 경험이 자신의 인식의 한계가 될 수도 있다. 사건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 해석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더 깊이 꿰뚫어 알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사건을 성령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본래 의도가 드러날 수 있도록 조명해 주신 글이다. 성령님께서 감동하여 쓰여진 글이니 성령님께서 가장 탁월하게 독서지도 하실 수 있을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III. 성경 속의 좋은 독서가


1. 바벨론 포로기의 명 재상 다니엘

성경 속에는 예수님 외에도 좋은 독서가들이 있다. 구약에서 탁월한 독서가는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성경말씀 외에도 바벨론의 모든 학문에 통달한 실력가이다. 그는 재상으로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성경을 읽는 사람이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남긴 두루마리를 읽는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날 기한이 다 찬 것을 깨닫고 세 이레동안 민족을 위해 기도의 등불을 밝히게 된다(단9:).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생활 70 여 년 만에 피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나라를 회복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는 다니엘을 비롯하여 느헤미야, 모르드개, 왕후 에스더 등과 같은 포로기의 탁월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 종교개혁자 요시야 왕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북 이스라엘에는 선한 왕으로 평가받은 사람이 거의 없는 반면 남 유다는 그래도 상당수 탁월한 왕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요시야 왕이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라는 성경의 평가가 이점을 말해준다. 요시야 왕은 재위 기간동안에 부패한 종교를 개혁하고자 힘을 쓴 책의 사람이었다. 그의 종교개혁의 핵심에 성전을 수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율법 책에 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는 그 책을 먼저 읽고 은혜를 받는다. 말씀 앞에서 옷을 찢으며 회개한다. 그리고 그 책을 온 백성들에게 읽어 들려준다(왕하23장). 전 국가적인 독경의 결실에 대하여 열왕기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좆기로 하니라"(왕하23:3)

요시야 왕이 훌륭한 점은 전 국민적인 독경 운동을 벌였다는 점이다. 그는 책의 힘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 책에 근거하여 종교개혁을 수행하였다. 그는 좋은 독서가였다.

3. 느혜미야의 종교개혁과 성경읽기 모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강력한 영적 부흥들 가운데 하나는 포로기의 지도자 느헤미야에 의해 이끌어 졌다. 파사(페르샤) 제국의 아닥사스다 왕의 총애를 받는 관원이었던 그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동족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게된다. 그리고 왕에게 간청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이 거대한 역사(役事)의 지도자가 된다.

귀국한 느헤미야는 거기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과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을 잘 조직하고 일을 분담하여 온갖 외적 내적 장애를 극복하고 성벽 재건에 성공한다. 그러나 성벽을 재건하는 것은 탁월한 리더십과 조직으로 되는 것이지만 백성들의 내면세계는 어떻게 개혁이 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느헤미야서 8장에서 그 비결을 알게된다. 느헤미야는 수문 앞 광장에 모든 백성을 모이게 한 다음 학사 에스라로 하여금 모세의 율법책을 읽도록 하였다. 요즈음이야 성경책이 한 집에도 몇 권씩 있지만 당시는 책이 귀한 터이라 개인적인 독서가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큰 소리로 낭독하는 독서방법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느헤미야서에 따르면 새벽부터 오정까지 낭독하였다. 또 그를 돕는 교사들이 있어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백성들로 깨닫게 하였다. 집단적인 성경공부가 시행된 것이다. 말씀을 듣고 공부하면서 백성들은 감격하여 울음바다가 되었다(느8:9). 독경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면적 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사람을 둘러싼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읽혀질 때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내면적인 힘이 솟아나게된다. 독서지도에 파종의 법칙이 있듯이 우리 마음에 좋은 씨를 심을 때 좋은 변화가 있다. 느헤미야는 독서의 힘을 알고 있었던 탁월한 지도자이다.

4. 多讀과 多作하는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이다. 그는 구약성경에 정통하였고 다른 학문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그는 많은 글들을 남겼는데 그것이 오늘 신약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책의 사람이었던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이 디모데후서 4장 13절을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울은 성령충만함을 받았으나 책을 원했습니다. 그는 적어도 30년 간을 설교했으나 그는 책을 원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책을 원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책을 원했습니다. 그는 셋째 하늘에 이끌리어 올라가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는 말을 들었지만 그러나 그는 책을 원했습니다. 그는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기록했음에도 그는 책을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책을 읽는데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합니다."

책의 사람 바울을 이처럼 정확하게 해석할 글이 또 있겠는가 싶다.

5. 달리는 수레위의 독서지도: 초대교회 빌립집사

초대교회 탁월한 전도자 중 빌립이라는 분이 있다. 그는 스데반이 순교한 직후 사마리아 땅에서 복음을 전했다(행8:5).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의 험악한 관계를 생각해 볼 때 그의 전도사역은 결코 평범하게 보아넘길 장면이 아니다. 그의 사역에는 병자들이 낫고 귀신들이 쫓겨 가는 등 많은 기사와 이적이 뒤따랐다(행8:7).

빌립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을 방문한 에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하게 된다. 그 내시는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총책임자로서 큰 권세가 였다(행8:27). 빌립이 그를 만났을 때 마침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 "읽는 것을 깨닫습니까?" "지도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내시가 빌립을 병거에 타도록 청하자 바로 그가 읽고 있던 이사야의 말씀으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가다가 세례받기를 요청하며 그리스도를 영접한다(행8:36).

빌립은 강력한 기사이적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디오피아 내시를 회심시키는데 기적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보다 책을 풀어 설명하는 법을 택하였다. 그의 학생은 책 읽기를 매우 좋아했던 사람인 것을 알수 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유대교의 경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흔들리는 마차위에서(당시는 포장도로가 아님을 상기하자) 독서를 하고 있었다. 빌립은 독서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에게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리라는 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IV. 성경 속의 F학점의 독서가


성경 속에는 좋은 독서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낙제점을 줄만한 인물들도 적지 않다. 신약과 구약에서 각기 그 예를 찾아보자.

1. 예수님으로부터 F학점을 받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사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당시 최고의 지성인들이요 학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가에 의하면 그들은 성경책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한 율법사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라고 물으시는 장면이 누가복음 10장 26절에 나온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성경책을 어떻게 읽는지, 독서방법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즉 책을 읽고 주제 파악을 제대로 했는지 물으셨다.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율법학자는 정확하게 대답하였고(눅10:27) 예수께서는 그를 칭찬하셨다.

사실 한 편의 글이나 책을 읽고 중심 생각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독해력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독해력은 단순히 문자를 해독하는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맥락을 짚을 수 있어야 한다. 즉 하나님과 바른 관계라는 신앙적인 맥락과 서사적인 맥락, 그리고 역사적인 맥락이 그것이다. 예수님의 평가에 의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열심히 성경을 연구했지만 참된 의미에서 아버지에 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는 자들"(마 22:29)이다.

바리새인과 시기관들이 독서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의 가르침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수께서는 이점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시고 그런 점을 본받지 않도록 여러 번 제자들을 경계하셨다. 성경에서 흡수한 지식을 말로는 전달하면서 자신은 영향 받기를 거부하는 독자를 일컬어 예수께서는 "위선자", 혹은 "외식하는 자"라고 하신다. 심지어는 "독사의 자식들"로 평가하신다.

2. 책을 불태우는 여호야김 왕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왕(왕하23:31-24:7 참조)은 아버지와 정 반대되는 인물이다. 그는 부왕(父王)이 이루어 놓은 종교개혁을 철저히 망쳐 놓은 아들이었다. 동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로 예레미야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깨우치기 위해 예언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여 왕에게 전달하였다. 하지만 여호야김은 책을 읽게 하면서 칼로 베어 불 속에 집어넣었다(렘36:). 옛날 사법고시를 치르는 학생들은 법전을 암기한 후 잊지 않으려고 불에 태워 물에 타서 마셨다고 하지만 왕은 책에 쓰인 예언의 말씀을 거부하는 의미로 불에 태웠던 것이다.

사실 책의 역사를 살펴볼 때 책의 가장 무서운 적은 좀이나 곰팡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 하다. 수많은 책들이 권력자들의 눈 밖에 벗어나 위험한 물건으로 간주되어 화형을 당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 역시 수 없이 여러 번 화형에 처해졌으나 목숨을 걸고 책을 지켜온 선배들 때문에 우리 손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이런 저런 이유로 인간은 책의 무서운 적이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 국가에서 성경책은 화형에 처해졌다. 책을 불태우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가치있는 책을 곁에 두고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역시 문제가 아니까 생각해 본다.

V.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의 전통



한 책(The Bible)의 종교인 기독교는 수천년간의 독서경험을 가지고 있다. 신구약 성경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된 이후에도 교회와 수도승들은 독서의 전통을 이어왔다. 역사속에서 교회가 성경 읽기를 강조하지 않았을 때에도 수도원서는 독서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특히 성경 읽기를 기도와 연결시킨 독서법을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 즉 거룩한 독서라고 부른다.

분도출판사에서 펴낸<말씀에서 샘솟는 기도>라는 책에 따르면 "거룩한 독서"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령을 청하기

<거룩한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 당신에게 내려오시어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도록 성령께 기도한다. 환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신앙의 빛으로 하느님의 얼굴을 당신에게 드러내 보여 주십사 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말씀에 대하여, 하나님의 임재에 대하여 마음을 여는 것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것이다

[빛이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아드님을 보내셨으니, 그분은 우리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보여주시기 위해 몸이 되신 말씀이시옵니다.
이제 주님의 성령을 제 위에 보내시어 주님께로부터 오는 이 말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뵈옵게 하소서. 그리고 그분을 더 깊이 알게 해 주시어 그분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주님 나라의 참된 행복에 이르게 하소서. 아멘.]

두번째, 성서를 펼쳐서 읽기

이제 당신은 성서 앞에 앉아 있다. 이 성서는 여느 책과는 달리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오늘 당신에게 1:1로 말씀을 건네고 싶어하시는 것이다.

그날 복음의 한 단락이나 연속적으로 읽어나가고 있는 성서의 한 단락을 주의깊게, 천천히, 그리고 여러 번 읽으라. 온 마음을 다해서, 온 지성을 동원해서, 그리고 온 존재로써 그 성서 본문을 경청하라.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침묵하여 집중해서 읽고, 이로써 독서가 경청이 되도록 한다.

세번째, 묵상을 통해 뜻을 찾기

하느님의 빛으로 밝혀진 지성으로 곰곰이 생각해본다. 필요하다면 성서 어휘 색인이나 교부들의 해설, 혹은 영적이고 주석학적인 해설을 절도있게 참조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기록된 바를 깊이, 그리고 폭넓게 이해하도록 애쓰라. 지성의 기능이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메시지 앞에 복종하도록 하라. 성서는 단 한 권의 유일한 책이므로, 언제나 성서 각 페이지와 전체의 중심이신 분, 곧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찾으면서, 성서는 성서로써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메시지가 당신 안에서 깊이 있게 메아리치도록, 필요하면 성서 본문을 다시 읽으라. 마음 속으로 말씀들을 음미하라. 그리고 성서 본문의 메시지를 당신 자신의 현재 상황에 적용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심리 관찰에 빠지거나 양심 성찰로 끝나 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이 당신을 놀라게 하고 매혹하도록 마음을 비우라.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당신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반사되게 하라. 지나칠 정도로 당신 자신을 바라보지 말라. 당신을 거룩하게 변모시키시는 분은 그분이시기 때문이다.

네번째, 말씀을 건네신 주님께 기도하기

하느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진 이제, 주님께 말씀드리라. 더 정확히 말하면, 그분께 응답하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이해한 그분의 말씀 안에서 당신이 받은 권유와 부추김에, 부르심과 메시지에 응답한다.

솔직함과 신뢰로써 쉬지 말고,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말도 삼가면서 기도하라라. 이것은 찬미와 감사, 그리고 이웃을 위한 탄원의 순간이다. 당신의 시선을 자신 안에 모물 게 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알 게 해주신 주님의 얼굴에 이끌리게 하라.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고 그분의 자취를 좇아 뒤따드라. 감수성과 감흥, 그리고 연상 등의 창조적 기능들을 자유롭게 풀라. 이들로 하여금, 당신에게 말씀하신 하느님께 순종하면서 말씀에 봉사하도록 하라.

다섯번째, 관상으로, 관상으로...

주님과 맺은 계약을 통해, 이제 당신 자신과 이웃, 그리고 역사와 세상의 온 피조물을, 요컨대 만사를 그분의 눈으로 바라보는 단계이다. 관상은 모든 이와 모든 것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다면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넓은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넓은 마음을 얻는다 함은 하느님처럼 큰 품으로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함이다.

여섯번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기

받아들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라. 경청의 여인이셨던 마리아처럼. 받아들인 말씀을 간직하고 잘 지키며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루 중에 자주, 기도한 단락을 기억함으로써, 혹은 한 구절만을 기억함으로써 말씀을 상기한다. 이것이 이른 바 "하느님의 기억"으로서, 하루의 일과와 노동, 휴식과 사회생활, 그리고 고독에 커다란 통일성을 부여해 줄 수 있다. 졸고 있다고 느껴지면 당신 안에 간직된 말씀의 씨를 상기하라. 말씀이 온 일상을 통해 당신과 동행할 수 있도록 깨어 있으라.

일곱번째, 정녕 말씀을 들었다면 실천에 옮기라

거룩한 독서의 끝은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말씀의 불꽃](분도)의 저자 프랑스와 까쌩제나는 "이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말씀을 들었던 에스겔의 경험(겔3:1-3)을 통하여 이 거룩한 독서의 완성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즉 거룩한 독서는 거룩한 책을 소화시키는 일이다. 우리 몸이 음식을 먹어 거기서 자신의 성장과 생존에 필요한 모든 핵심 성분, 모든 힘을 뽑아 내듯이 거룩한 독서는 성경말씀을 먹어서 우리 신앙의 자양분을 얻는 행위이다. 그 말씀이 우리 삶을 통과하여 육화되는 것이다.

프랑스와는 교회를 렘브란트 작 [성경 읽는 예언녀 안나]라는 성화로 비유하고 있다. 그녀는 일생동안 성경을 읽으면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을 기다려온 여인이다. 램브란트의 그림에서 그녀는 오래된 낡은 책을 펴들고 예전에 읽었던 익숙한 구절을 찾아내려고 한 손에 책을 펼쳐들고 한 손은 본문을 더듬고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교회는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여인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가 증언하듯이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 활발하게 읽혀질 때 그 사회는 개혁되고 교회는 부흥하였다. 반대로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성경을 덮어놓고 살아갈 때 신앙의 위기가 찾아오고 그 사회는 부패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열려있는 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VI. 결론


성경에서 볼 때 책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선택하신 매우 중요한 매체이다. 자신의 뜻을 책 속에 담아 세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유통되기를 바라셨다. 예수께서는 책의 사람이셨다. 성령님은 성경책의 공동 저자로서 성경의 독자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개인 교사가 되어 주신다. 우리는 책을 열 때 하나님의 마음을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서학습을 통하여 인재를 길러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독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께서 책을 사용하시는 방법론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종 모세는 책의 힘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었던 지도자이다. 하나님의 말씀만 단순하게 전달 한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읽는 독서방법까지 가르쳤다. 일명 쉐마로 불리우는 신명기 6:4-9은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도 문자 그대로 실천하고 있으며 수 천 년 역사 속에서 그들의 민족적인 정체성을 지켜준 탁월한 독서법이다.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모든 독서는 마음에 새기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강론하며(읽어주는 독서를 포함하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짜투리 시간을 철저하게 활용한 독서 방법을 실천하며..), 그리고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철저한 독서환경을 구축하라)고 한다. 요컨대 독서를 삶의 습관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책 속에는 역사적인 맥락과 서사적인 맥락 그리고 신앙적인 맥락이 함께 있다. 따라서 성경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이 쓰여진 사회 문화적 배경까지 아울러서 입체적으로 맥락을 잡아야 한다. 독서의 핵심이 중심 생각을 파악하는데 있다면 중심 생각을 파악하는 핵심을 정확한 맥락을 짚어내는데 있다.(오른쪽 그림은 예루살렘 거리)

앞으로의 과제는 성경 본문에서 어떻게 독서학습이 사용되고 있는지 방법론들을 차분히 살펴 발굴해 내는 작업이다. 책의 종교인 기독교는 이미 수 천년 간 독서의역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한 영적 유산을 계승하여 현대적 감각에 맞게 발전시켜 이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데 적용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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